나하고는 동문이면서 나보단 조금 늦는 바람에 학교시절엔 만난 기억이 없는 이,
그 이가 즐겨 부른던 노래, (늦기 전에 )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시절보다도 조금전이었던 그때나 한참이나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어떤 끔찍한 장애물에 시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 수능 또는 SAT )
이 괴물이 모든 젊은이들을 포로잡고 우리는 그것에 꼼짝못하고 절절매며 눈치마저 살펴야 살아갈 수있게 되었다.
첫째,
그 성적이 모자라면 원하는 대학도 물론 원하는 직장도 만나주지 않으니 그 수능에 노예가 될수밖에 더 있겠는가 ?
수능점수가 좋아야지, 높아야지 만사가 형통이니
중고등시절을 모든 절은이들은,
그 괴물에 사로잡혀 햇볓 한번 제대로 못보고 ” 달빛보고 집을 나와 달빛보고야 집엘 돌아와 퉁퉁부은 몸도 마음도 간신히 쉴수가 있다.
그 지긋지긋한 공부벌레가 된 탓에 ( 열심히 한 구릎 ) 아이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거나 누렇게 떠있었던 것만 같다.
나 자신은 어땠던가 돌아보니 그들로 부터 한참이나 소외된 모습이었다. 지금도 부끄럽기만 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그네들 소위( 공부벌레 )들은 머리에 꼭 들어찬 지식때문인지 대부분 얼굴표정이 무겁고 또한 대부분 차가웠다는 기억이다.
( 차겁다 )는 것은 많은 경우, 냉정하고 배타적이며 교만하다는 걸로 해석되기도 한다.
가까이 사귀고 싶어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가면 벌써 경계하는 차갑기만 눈초리가 반겨주었었던 것만 같은 기억이다.
나같은 (보통내기 )와는 내용도 다르거니와 우위에 서야하기 때문이었을 것같다. 아니면 나 보다 좋은학교엘 갈수 있겠는가 ?
그러자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위 (공부벌레 )는 차겁고 배태적이어만 할까 ?
그렇다고 공부못하는 나는 그와 반대로 상냥하고 친절하다는 등식은 성립되진 않을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사람)이 아니고 그 학생들을 감싸고 있었던 그 (환경)을 탓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다.
왜 ? 어째서 ?
우리는 그 사회는 몹쓸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놓고 ( 교만과 냉정함 ) 그리고 스스로 (소외)되는 이들을 사회에서 대량생산 ? ) 해야만 하나 ?
인간들을 (높고 낮음 ), (차거움과 따스함 ), (웃몫과 아랫몫 )을 만들어 그들을 둘로 나뉘지 않을 수밖에 몰아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
그로 인하여,
차츰, 그 사회는 갈라지고 서로 시기하는 분리된 사회, 서로를 시기질투해야만 하고 미워해야 하며 흘겨보아야 하나 ?
(지식)의 자리를 좀 뺏어 (지성과 교양, 에딧켓 친절함)등으로 메꾼다면 지금보단 조금이라도 사회전체가 따뜻한 아랫몫이 되진않을까?
(사랑)이 빠진 (지식) 은 왠지 삭막한 벌판에 비유한다면 마치 부족한 나 자신이 드러날까봐 겁을 먹어서는 곀코 아닐 것이다.
작금의 교육제도에서 그 지긋지긋한 (수능)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샘이흐르는 파아란 풀밭, 따스한 온돌방아랫몫으로 하면 불편할까 ?
이러며 학교성적도 차거운 온돌웃몫이었던 내가 감히 ( 잘? )나가고 있는곳에 재를 뿌리자는 뜻으로 오해되진 않았으면 싶다.
다만,
차갑다 싶은 이즈음의 사회현상이 못내 불안해지기만 한 성적불량이었던 사람이 감히, 그 호숫가에 감히 심술 ( ? )을 부려보고 싶다.
좋은 마음으로, 평화스런 마음으로 , 아가페의 사랑으로 도전장을 내밀고싶다면 많은 이들이 킬킬대며 웃을까 ?
가만있어봐… 저 위로부터 소리가 들려오나 보다.
” 너. 그래 너 말이야. 뭘 중얼거리며 쓰고있나 드려다 보자니까 그런거였어 ?
가거라, 어서 가거라. 정성을 들여 열심히 한다면 그곳의 창문이 열리고 조금이라도 새바람이 전해지지 않겠느냐.
온세상의 문제이긴 하지만 네가 태어난 그 고장에 공기가 몹씨 탁해진듯 하구나.
어서 가거라, 정성이 있는곳에 설마 무소식이겠느냐, ”
누구일까, 그이 ? 하느님 ? 뉘면 어떤가…
늦 기 전 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제발 큰 환영소린 없더라도 배척일랑 말았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