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머리에 머리카락이 나온 이래로 처음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언제고 한번 그려봤으면 하는 욕망은 있었으되 그 기술을 배워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질 못 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고물상엘 들어가보니 그림을 그리던 어떤 이가 내다 논 붓이며 페인트등
쓰다 남은 그림도구가 있기에 오불을 주고 한 보따리를 안아 집에 와 펼처놓으니
가슴이 뛸 지경으로 흥분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그만 화판을 놓고 마주 앉으니 배워본 일이 없는 이 작업을 하얀 화판위에서 어느 점 부터 시작해 나가야 할찌 난감했습니다.
그려보고 싶었던 나의 욕망은 이제와서 어느 세월에 어디에 가서 그걸 다 배워갖고 와서 시작하도록 나를 묶어둘 수는 없었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던데…
에라, 모르겠다.
물감을 짜 내어 생각나는대로 칠을 해 나갔습니다.
그 화판에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입혀지고 있었습니다.
하얀 화판에 내가 바라는 무엇을 채워 나간다는 것은 과연 예상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고통속에서 배우고 있었습니다.
모처럼 얻은 화판을 그냥 내버릴 수도 없어 그 위에 다시 또 칠 해보고 또 그 위에 덧칠을 해대니 울퉁불퉁 얼룩진 화판은 “당신때문에 나 못살겠다.”고 울부짖는 것 같이 흉한 몰골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예상도 못 했던 일이 거기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덧칠된 화판 가운데서 어떤 하나의 상(Image)이 히끄무리하게 드러나는 것이였습니다. 놀라기도 했지만 새로운 용기가 솟아서 그 이미지를 중심으로 나름대로 살려 나가니까 그런대로 하나의 그림 모양이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그림 그리는 이의 눈으로는 우수꽝스럽지도 못할 것이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기적같은 일이였습니다.
(인생)도 아마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못하고 실패하고 또 넘어지고 하면서 사람의 일생을 화판같이 삶의 상을 새겨 나가게 되나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실패하고 넘어지는 그 자체가 아니라 넘어지고 나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고 잘못된 칠을 덧칠하는 가운데서 (희망)을 보고 그 희망안에서 긍정적인 가치(positive value in life)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 아닐까 합니다.
그러면 추구하는 나의 반복하는 노력에서 (빛)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반복해서 덧칠하는 과정을 우리는 (훈련)이라 말해도 될런지요.
빛을 찾아가는 일을 믿음이라 한다면 신앙인에게서 믿음은 덧칠하는 가운데서 기어이 찾겠다는 나의 (의지)가 바탕이 되야한다 봅니다.
나의 주님은 화판을 단 하나만 허락하시는데 이미 망쳐논 나의 화판은 어쩐다지?
오불짜리 사다가 얻은 깨우침 치고는 제법 수지맞는 장사를 오늘 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