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상처, 그래서 진정한 아픔이

바로 앞의 글에서,

우리는 상처를 말하고 듣고 또는 직간접적으로 보기도 하면서 그 상처들이 가져다 주는 아픔이 얼마나 괴롭고 어려운 것일지를 

함께 나누었었다.

 

어느날 바라지도 않았고 반길 일도 없는 재난이 우리의 삶을 덮쳐 집을 부수고 물푹탄을 쏟아부어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고

사람마저 공격하여 상처를 주고 심지어는 생명을 앗아가는 그 상처는 우리에게 쉽게 잊을 수없는 그리고 회복되는데 오랜 새월을

견디어야만하는 아픔을 선사한다.

 

집을 잃고 전기가 끊어져 썩어가는 음식을 내다버려야 하는 일은 정말 큰 불편이며 고통이다.

 

그런데,

만약 어느날 평화스럽게 살고있는 나를 느닷없이 괴한이 처들어와 나의 목숨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나는 분명히 기겁을 하여

놀라며 분명히 본능적으로 그에 항거하고 죽기를 한하여 그 괴한과 싸울 것이다.

나의 하나뿐인 (생명)이 죽음과 삶 사이에 놓여있는 급박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난으로 인한 가재도구의 잃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생명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명을 잃어서 얻는 그 아픔은 그 무엇하고도 비교될 수없는 절대적인 아픔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생명이 닥친 재난앞에서 위험에 처해지고 저 앞에 구원의 배인 방주가 이제 막 그문을 닫고 떠나려는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필사적으로 그 배에 올라 나의 생명을 구하려고 달려갈 것이다 .

 

부당한 괴한의 침입으로, 사고로, 전쟁의 희생양으로, 잘못된 사형제도의 희생양으로도 사람의 생명은 희생되고 돌이킬 수없는 

상처를 받게된다.

어른이 그의 생명을 위협받는 경우, 제한적으로나마 항거할 수있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위협을 받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어떠한 항의나 저항도 할 수없는 물리적으로나 다른 힘으로도 대항할 수없는 모태안의 어린생명을 그생명의 엄마 아빠 그리고 또

다른 가족들의 합의아래 의사를 찾아가 무지막지한 물리적 방법으로 희생시키는 행위는 무엇으로도 합리화시킬 수도, 정당화할 수도 없을 인간이 저지를 수있는 마지막 만행일 것이다.

 

그 어린 생명의 참주인은 누구도 아닌 창조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희생되는 그 어린 죄없는 생명은 하느님께서 위로하시며 보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낙태의방법을 통한 살생행위 이후 가장 큰 고통과 그 후유증을 얻게되는 장본인은 바로 어린생명의 엄마라고 한다.
육신의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이 말고라도 정신적, 감정적(Emotional)인 아픔은 아마도 두고두고 괴롭힘과 죄의식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른다.

 

기를 수있는 환경이 못되어서, 엄마나 아기의 건강이 염려되거나 위태로워서, 강간등 비정상적인 임신으로 인해서.. 등등의

이유로 낙태를 선택한다는 경우를 말할 수있을 것이다.

 

장애인으로 태어난대도 고귀한 생명이며, 또 사회에 정상인보다 더 많은 기여를 하는 경우도 많으며 강간으로 인한 임신은

통계에 의하면 1 % 미만인데다가 그럴 경우도 살생할 명분으로 성립될 수도 없거니와 기를 의도가 없다면 도움을 주는 입양기관이

많이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특히 창조주 하느님을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인간생명의 고귀함을 새삼 인식하며 

더 나아가 무지와 오해로 생명을 희생시키려는 주변의 이웃들에게 계몽과 대화를 통한 권유, 기도등으로 의로움을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을 소홀히 하지말아야 하는 일일 것이다.

 

바로 그런 일들을 함께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우리의 공동체안에 단체로서의 RESPECT LIFE 모임이 설립되었으나 함께 할 

하느님의 일꾼들을 모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뜻에 공감하며 동참할 이들의 많은 참여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생명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생명을 사랑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운동에 동참을 간곡히 기다리고 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하시며 우리의 주님께서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