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형제는 ” 우리 교회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고 한다.
한 자매는 ” 우리 교회가 자꾸만 쇠약 해저 가는것 같다. ” 고 걱정한다.
또 다른 이는 ” 이러다간 우리 교회가 언젠가 문 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 며 지레 겁 낸다.
우리 교회가 잘 못되지 말고 잘 되었으면 하는 공통된 마음이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저 아무 생각도 없다면 숨이 멈춰 꺼저버린 송장 일텐데, 그런 걸어다니는 송장 이어서는
안되겠기에 남들도 하는 걱정을 해 본다.
얼핏 떠 오르는 생각으론 이렇게 (걱정)하는 교우들이 있으니 교회의 앞날은 걱정할 필요도 없을것 같고 또 반면에 그(걱정) 하는 마음들 때문에 앞날이 걱정되는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도대체 걱정하는 그 내용이 무엇일까 형제에게 자매에게 물어 보았다.
1. 교인수 가 자꾸 줄어 드는것 같다.
2. 심장 박동이 펄떡 거리는 청년의 가슴과 같지 못하고 언제 곧 멈출것 같이
미동만 하는 차악 가라 앉은 모습이다.
이것이 걱정거리의 큰 흐름인 것 같다.
언젠가도 한 영신단체에서 이런 걱정을 하는 모임을 열고 그것을 타개할 활성화 방안을 찾아 머리를 맞 대는 나눔을 가진 일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오고 간 얘기는 내용은 조금씩 달라도 그 향방은 대충 이러 하였다.
” 그 사람 때문이야. “
” 아니야, 저 사람 때문이지. “
” 아니, 그들 말고도 또 다른것이 문제야. “
한결 같이 (다른 사람)아니면 (다른 일)때문이지, (나)가 문제의 중심에 있기에 (나)가 바뀌어야 한다고 (내 탓 이오!)하며 가슴을 치는 이는 없었다.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 하나만 빼고는 나머지 손가락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도.
제기된 문제를 놓고 현실적으로 꼽아 보자.
1. 교인 수가 줄어드는 문제.
해 마다 일년에 두번씩 선교활동에 의해서 또는 찾아 오는 (손님)을 열심히 가르쳐서
세례를 받은 (새 신자)를 만들어 새 가족을 맞아 들인다.
영세식 날엔 모두 박수로 환영하고 축하를 하여 준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바로 일주일후
미사시간 이나 친교실에 찾아온 그들 (새가족)을 우리는 과연 몇명 이나 기억하며 인사라도 건네 주고 있는가. 어떤 이는 일단 신자가 된 이상 신앙생활은 자신의 일이지 누가 일일이 챙겨 주겠는냐고 한다.
일리가 있기도 하지만 새 화초나 묘목을 심어 놓기만 하면 저절로 자라길 기대 할수 있는가
뿌리를 내려 자성 할수 있을때 까지는 어린 아기처럼 돌 보아 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을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챙겨 주는데를 찾아 설사 그곳이 (진실)되고 (진심)인곳이
아니더라도 우리 둥지를 떠나가는 이들을 원망 할수 있겠는가.
(새 가족)을 챙기고 지켜서 그네들이 우리 교회에다 (행복한 집)을 지으면 이제 그들이
또 다른 (새 가족)을 찾아 나설것은 당연한 이치 아닐까.
모두 당장에 실천 하자.
2. 신앙심을 깨워 일으키기.
(신앙심)은 어디에서 오고 누구의 것인가.
내 가슴에서 오고 (나)의 것이라고 새삼 말할 나위도 없을것이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살면, 자신과 교회가 살고,
그 말씀이 죽으면, 자신도 교회도 죽는다. “고 했다.
말씀의 씨앗이 뿌려 졌을때 그 텃밭에 따라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마르4.26)
(결단코 교만한 마음으로 다음의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난 몇해를 거듭해서 성경공부반에 출석하고 있다. 얼핏 대단한 열성인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일주일에 한번 제한된 시간에다 일정한 내용만 한번에 배울수 있기
때문에 교회행사나 방학등을 빼고 나면 게다가 건만증 3기쯤이나 되는 나는 배우고 나서는
즉시 잊는 셈이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왜 이런 얘기를 하냐 하면 매번 보면 열명 내외만 배우러 모인다. 교우수는 천명 넘는데.
모두 먹고 사는일에 바쁘고 피곤하고 그 일 제끼고 배운다는것은 무리이다.
내가 지금 한가한 소리 하고 있을수도 있다. 그저 바람직한 소망을 일반론으로 한것뿐이다.
그래도 심지 않은 씨앗이 어찌 열매를 맺을까 해서 해보는 소리이다.
1. 성경을 공부하자.
배우는 데서부터 시작될것이니 공부 하는수 밖에 없을것이다.
2. 모이면 기도 하자.
둘 이상 모여 기도하는곳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으니.
(건방지고 교만하다고 욕을 먹어도 하고싶은 말이 있다)
성전 안에서 너무 웃고 떠들어 소란하게 하거나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몹시 민망스럽다.
입으로 외우는 기도말고 잠시라도 가슴으로 주님께 아뢰자.
기도중에 하품하는이 바로 곁에 앉았을때나 모임에서 기도하며 다리를 꼬아 앉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게 될때엔 남 까지도 분심을 갖게 된다.
3. 친교실 등에서 친한 이웃만 말고 낯선 얼굴도 반가이 맞아 주자.
“너회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뷴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마태6.25-34)
이렇게 예수께서 일러 주신 일을 하고 (우리의 걱정)은 성령께 맡겨 드리자.
그렇게 하여 시카고순교자성당의 교우들이 성령의 뜨거운 불길에 모두 화상(?)을 입고 우리 성당위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고 시카고 동포들이 구름처럼 몰려 오게 하자.
아—멘!
(이글은 누구 보다 차거운 가슴을 갖고 가라 앉아있는 저 자신이 자성 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혹시라도 교만한 저의 본심이라도 섞였으면 용서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