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을 조심하십시오!

 

 

 

 

 

발밑을 조심하십시오!

 

           

"삼식이"라는 은어가 있습니다. 집에서 삼시세끼를 다 먹는 사람을 빗대어 부르는 말입니다. 또 "식충이" 하면 밥만 축내는 사람을 뜻합니다. 할 줄 아는 것은 그저 먹는 것일 뿐, 잘하는 것이 없으니 먹는 것도 아까운 사람들이란 뜻 아닐까요? 사람은 무엇을 잘하던 못하던 존재 자체에 그 의미가 있고, 존엄하며, 사랑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식충이' '삼식이'라는 말을 사람에게 하는 것은 좀 심하다 싶습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가야하는 인생을 살면서 세상과 이웃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남겨놓지 못하면 한편으로는 진짜 "삼식이"와 "식충이"같은 삶이 되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그 기쁨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은총아래 세상을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복잡함 안에서 행복이나 삶의 평안함은 우리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세상에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세상을 삭막하게 하는 약령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제자들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가지고 파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알아들어야 할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지팡이 하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허락하신 제자들이 챙길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빵도, 전대의 돈도, 그리고 사막에서 이불을 삼을 겉옷 등은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시며 어느 한집에 머무르라고 하십니다. 이 뜻은 빵이나, 돈이나 이불 등은 일하는 사람들이 당연이 얻어야 하는 것이므로 머무는 집에서 해결을 하지만 스스로 너희들을 지킬 지팡이는 가지고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에는 광야가 많습니다. 사막과 광야를 여행을 하려면 뱀이나 전갈에 대한 위험에서 보호할 수 있는 지팡이 하나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얻어지는 것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얻어지는 것들에게만 신경을 쓰게 되면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잊고 살아갑니다. 먼저 자신의 발 아래를 살펴보고,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는 기본적인 자세를 잊어버리는 것이지요. 내가 십여 년 전에 모래인 줄 알고 뛰어내렸다가 모래 밑에 숨어있는 바위를 생각하지 못해 두 발꿈치 모두 부스러진 것처럼 세상의 위험은 눈 깜빡 할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발 밑을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의 악은 항상 우리 발밑에 숨어 있습니다. ‘뱀은 주님께서 만드신 모든 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 했다.’(창세 3,1)는 말씀처럼 뱀은 모든 사람들을 유혹하는 존재입니다. 구약에 등장하는 뱀은 모두 부정적 의미입니다. 적군을 가리키는 대표적인 표현이기도 했지요.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 독사의 무서운 독이다.’ (신명 32,33) ‘악인들은 어미 배에서부터 변절하고 뱀과 같은 독을 지녔다.’(시편 58,4)

 

 

몸이 작은 뱀에게 치명적인 독이 있습니다. 덩치 큰 뱀은 거의 독이 없지요. 독뱀은 침샘의 하나가 독샘으로 변하고 독니를 통해 독을 뿜습니다. 독액은 먹잇감을 죽이거나 마취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가나안 지방에는 여러 종류의 뱀이 있는데 대부분 독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것은 작은 뱀처럼 우리 발밑에 숨어있는 세상의 독입니다. 복음의 지팡이로 쫓아내야 하는 뱀의 독은 늘 우리 발밑에 숨어있습니다. 그런 일이 우리 삶에 반복되지 않게 하려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어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발밑에 숨어있는 욕심인 독에 취하면 복음을 살 수 없습니다.

 

독에 취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첫 번째 독서에 나오는 예언자 아마츠야입니다. 오늘 첫 독서에 등장하는 아모스는 하느님의 힘에 붙잡혀 북 이스라엘 왕국에 가서 갑작스레 예언활동을 하게 된 남쪽 유다사람이었습니다. 농부였던 그의 예언과 당시의 북쪽 왕국 전담사제 ‘아마츠야’와 충돌하게 되는데, 기득권을 쥐고 있던 아마츠야는 아모스 예언자에게 못된 말을 하여 그의 행동을 제약하려고 합니다. 이익과 결부된 상황이 되면 정의는 힘에 밀리고, 올바른 일은 적당한 힘을 얻을 때까지 불의에 눌리게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풍성한 먹거리도, 여유 있는 돈도, 그리고 안락한 삶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를 독에 취하게 해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아에 도취되어 기쁜 소식 보다는 배부름에, 여유로움에, 그리고 안락함에 취해 기쁨을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발밑의 독사나 전갈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복음을 살아라! 즉 기쁜 소식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지팡이로 우리 발밑에 숨어 호시탐탐 독을 뿜으려는 독사를 쫓아내어 그 삶을 살지 못하면, 마치 알코올 중독자나 정신병자처럼 혼자만 만족하고 함께 사는 가족과 함께 하는 이웃들은 슬퍼하고 아파하는 삶의 연속일 뿐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삼식이의 삶과 식충이의 삶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행여 발밑의 독사에게 물려 독에 취해 혼자만 만족하고 사는 모습이 삼식이나 식충이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 손에 들려져 있어야 할 것은 복음의 지팡이 입니다. 예수님이 허락하신 복음의 지팡이를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지팡이로 발밑을 경계하고 독을 몰아내어 참 복음의 기쁨을 살아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의 지팡이를 듭시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선포합시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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