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찾아서

 

 

 

 

 

별을 찾아서

 

오늘은 주님 공현 대 축일입니다. ‘공현’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고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구세주가 아니라, 이민족 모든 민족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을 떠나게 만든 것은 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빛나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그들을 위해서만 빛날리 만무하기에, 그들만 그 별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별을 보았기 때문에 길을 떠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길을 떠났기 때문에 별을 보았다." (성 요한크리소스토모) 그들의 마음은 참 지혜에 열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이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믿는 모든 이들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갈증이 믿는 모든 이들의 마음 안에 솟아나게 해야 합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해 알려줄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외면하였고, 먼 이방에서 사람들이 찾아 와 그분을 경배했다는 말입니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받아들여집니다. 이처럼 동방박사(이방인)의 열망과는 달리 헤로데 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여정을 거의 마칠 무렵까지 헤로데는 잠들어 있었기에 혼란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 역사를 뒤바꿀 새로움에 직면했을 때 혼란스러움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헤로데의 모습에서 앞으로 벌어질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짐을 보게 됩니다.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화와 새로움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간교한 계략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를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모습은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여정을 말해 줍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말씀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밤하늘에 수 없이 떠있는 별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래전에 아브라함이 자기 친지와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습니다. 떠남은 쉽지 않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듯 그들의 여정 안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이 그리워 그들의 마음이 어두웠을 적도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왕을 찾아 헤로데왕에게 묻지만, 그들에게 들려진 것은 간교한 주문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방해와 스스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향한 동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말씀을 만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뵙고 경배한 다음 준비한 예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멀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조용히 퇴장합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찾겠다는 마음과 그것을 좇아 떠나겠다는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온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듯이 우리게도 수많은 욕심의 별들이 함께 떠 있습니다. 화려한 왕궁처럼 재물이나 지위가 꾸며주는 화려한 별은 하느님의 별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나은 지위를 얻어, 우월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화려한 별도 말씀의 별이 아닙니다. 어두운 밤에 별이 빛나듯, 초라하고 고통당하는 약한 이웃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사라집니다. 초라한 사람들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우리가 살듯 우리의 보살핌의 마음 안에서 별은 빛나고 주님의 말씀은 살아계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황금(재물)과 유황(기도)과 몰약(자기죽음)입니다.

 

별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이기심과 헛된 망상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하고 고통스런 약자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빛을 발할 것입니다. 헤로데와 율사들 같이, 간교한 주문도, 스스로를 막고 있는 안전하고 따뜻한 내 삶의 이기심 영역을 떠날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말씀을 향한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말씀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은 그 삶의 숨결로 계십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의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 버려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시시함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를 가지고 잘잘못을 따지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바오로 사도는 오늘 에페소인들에게 보내 편지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은 혈연이나, 능력, 학벌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고, 신앙의 빛으로 비추어야 참된 상속자가 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과 교회는 성탄을 맞으면서 화려한 트리를 만들고 그 위에 예쁜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도시의 밤에 많은 십자가가 붉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불을 밝히고, 트리의 전구를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로 우리들의 신앙의 불을 밝히는 것, 희망의 빛을 비추는 것 그리고 사랑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 주님을 드러내는 주님께 경배하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춥습니다.

세상은 얼어붙지만 우리 마음을 얼지 않아 따뜻하게 주님을 감싸는 마음이였으면 합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별을 따라온 동방박사처럼 하늘에 있는 수 많은 별 중 우리를 인도하는 별은 무엇입니까?

김두진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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