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우리는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애증 관계가 되기 쉬우므로 아픔도 더 커집니다.
서로 기질과 성격이 다른 사람이 함께 부딪히며 살아갈 때
친밀감이 오히려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가까운 관계에서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오해나 상처를 주고받는 위험이 내포될 수밖에 없습니다.
친밀한 관계에서 누구나 흔히 경험하는 감정이 실망입니다.
실망은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무너뜨립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대와 실망이 큰 법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혹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가장 큰 기대와 가장 큰 실망을 주는 관계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결혼을 할 때 상대방이 자신의 필요를 채워 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결혼식이나 신혼여행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자녀를 낳고부터는 자녀에게 모든 기대를 걸기 마련입니다.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자녀가 이루어주기를 원하며
갖은 노력을 자녀에게 쏟아 붓습니다.
그러나 역시 자녀에 대한 기대와 꿈마저 깨어집니다.
친밀한 사이에서 처음 실망을 겪을 때는
혼란스럽고 믿지 못하지만 실망이 쌓일수록 낙심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못 다 이룬 기대를 채우기 위해
재물이나 일에 매달리기도 하고
혹은 친구 등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습니다.
결국 내 기대와 바람을 채워 줄 수 있는 사람이나 물질은
세상에 없음을 깨닫고 절망합니다.
이런 좌절된 마음은 보통 사람들이 겪는 무거운 짐입니다.
모든 사람이 채워지지 않는 근본적인 필요를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짐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대를 다 채울 수 없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실망을 겪을수록
더 참되고 깊은 희망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에서 겪는 실망으로 혼란스러워하고 괴로워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더 큰 희망이 있기에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사람이 아닌,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변하고
이기적인 태도로 인해 우리를 실망시키지만,
자비와 은총의 불가마이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결코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겪는 실망이 클수록
주님께 향한 희망이 더욱 커지며
주님께 더욱 의탁하게 됩니다.
사람이나 환경이 빼앗아 갈 수 없는
더 큰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희망과 꿈이 무너지면
주님 향한 희망과 꿈이 더 커지는 것이
아이러니한 진리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 거는 기대와 꿈 자체가
허황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퇴색되는
물질이나 쉽게 변하는 사람에게 기대와 꿈을 거는 것보다,
가치 있고 영원한 것에 희망을 두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삶일 것입니다.
인생의 황혼녘에 깨달아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는 것보다
젊을 때부터 희망의 닻을
예수 그리스도께 매는 것이
제일 안전하고 행복한 인생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에게 실망을 줍니다.
뿌리에서 끊긴 꽃이
잠시는 싱싱하고 아름다워도 금새 말라 시들어 버리듯이,
주님에게서 끊어진 인생은
아무리 화려해 보이고 자신만만해 보여도
언제 추락할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안개 같은 인생이 아니라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인생의 실망은 참된 희망으로 바뀌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