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해야 되는 이유 )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거지로 이해한다고 입술로는 말할 수 있을지라도
가슴으로는 , 진심으로는 받아드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루카6,27)
예수께서 이렇게 간곡히 명하셨고.
성당에서 이 복음이 선포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입술로 “예. 믿습니다.”
그렇게 번번이 고백하였으면서도 나의 가슴은 언제나 나의 입술을 의심하였었다.
신문에서,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형무소로 찾아 가 그 원수를 양아들로 삼았다는 소식을 듣고서 나는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이는 일시적으로 마음이 감상적으로 되어 한 번 그렇게 해 본 거 겠지. 그랬었다.
아니 어떻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그렇게 가혹한(?) 형벌같은 명을 내리시어 이렇게 사람을 고통스럽게 해 주신단 말일까?
나의 좁디 좁은 속알머리로, 아량없는 마음으로는 어떻게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지 거부감이 늘 가로막고 있다.
나를 해꼬지를 직접 했던 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나에게 별 반가운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는 그 사람도 물론이고.
아니 나에게 전혀 잘못은 커녕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마저도
별로 내키지 않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이 옹졸한 졸장부한테
원수를 사랑하라 하시니 얼마나 괴로운 숙제일까?
그러면서도 나의 주님의 명이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고통으로 늘 나는
그 생각만 하면 괴로움에 묻혀 살아온 셈이었다.
여기 너무나 기막힌 이야기는 나에게 살아있는 교훈을 보여주기에 소개하고 싶다.
A 씨네 가족 : 은퇴한 아버지와 대학교수인 아들.
B 씨네 가족 : 생계를 위하여 창녀가 된 엄마, 그리고 반정부운동을 하는 동성애자 딸.
C 씨네 가족 : 유산으로 사는 과부 엄마, 자유뷴방한 그러나 정의감도 있는 딸.
이들 세 집안은 전에 서로 만난 일도 전혀 아는 사이도 아니였다.
A 씨는 은퇴연금으로 살아가지만 한마디로 막가파여서 시도 때도없이 술을 퍼먹고
그날도 창녀소굴의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B씨의 손님이 되어 만나게 된다.
B 여인은 참으로 기구한 환경으로 반독재운동을 하다 점보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