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생명의 빵 2.
지난주에 이어 미사성제의 의미를 보면서 살아있는 생명의 빵을 살펴봅니다. 지난주에 주님의 기도까지 말씀드렸으니 이제는 교우들이 서로 우리는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것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평화의 인사의 의미는 형제, 자매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서로를 위해 나누겠다는 구체적 약속이기도 합니다. 평화라는 한자어를 보면, 平和 인데 벼를 뜻하는 화 (禾) 변에 입을 뜻하는 구(口)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즉 벼를 먹는 입이 공평하다는 뜻인데 평화를 이루려면 나누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세상이 평화롭지 않은 것은 나눔의 부족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저 나 하나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너무 작은 세상에 사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해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큰 세상을 위해 내 자신을 내어놓고 우리 자신을 나누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사랑을 살아가는 우리를 큰 세상 즉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큰 세상 즉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나를 나누겠다는 각오가 선 후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합니다. 이 때 사제는 예수님의 몸인 성체를 쪼갭니다. 저는 신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성체를 높이 쳐들고 쪼갭니다. 이는 신자 모두가 예수님의 성체가 쪼개어 우리게 나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성체를 쪼개는 것은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체가 예수님의 몸이라 믿는다면 예수님의 몸이 쪼개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 즉 예수님의 죽음이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리고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하며 그 구원을 선포하는 구체적 행동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해서 성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성찬례 안에서 이렇게 묻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죽어 가는가? 이웃에게 얼마나 자신을 내어주는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싸우며 살고 있지 않은가? 싸움은 지지 않겠다고 쳐드는 자존심인데, 그 자존심이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무엇이 지혜롭고 무엇이 어리석은 일인가?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지지 않겠다고 치켜드는 우리의 자존심이 잠시 우리의 체면은 지켜주겠지만 진정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생각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청원 드렸고, 그 삶을 살기 위해 평화의 인사를 통해 친교를 이루며 내 자신의 것을 형제자매들과 나누겠다고 약속했으며 그 나눔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며 빵이 쪼개어지듯, 우리 자신의 신비적 죽음을 약속합니다. 그 신비적 죽음은 "나는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준비된 우리가 그분을 받아 모십니다. 거룩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그분을 모셔드려 이제 성찬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을까? 생명의 빵을 받아먹는 우리가 과연 이 빵에 굶주려하며 감사하게 받아 모실 수 있을 것인지 각성해야 합니다. 미사에 참여하면서 영성체를 안 하면 안 되니까 습관적으로 받아 모시는지 아니면 정말로 그분의 현존이 필요하고 그분의 사랑이 절실해서 그분을 받아 모시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억하며 이를 행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그분을 기억하며 하는 행위여야 합니다. 바로 6주에 걸쳐 장대하게 선포된 복음말씀에서 생명의 빵을 먹은 사람답게 살라고 하시는 성찬의 의미는 구원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가 큰 세상 즉 하느님의 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답게 살라고 부르시는 그분의 사랑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그분 안에 머물기에 우리는 그분의 삶을 살아갑니다. 한 솥밥을 먹는 부부가 닮아가듯 우리는 주님을 닮아갑니다. 주님을 닮아가기에 더욱 그분의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그분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해서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이 되고 자기 시간을 자기 재능을 자기가 가진 것은 내어 놓고 목숨마저 내어 놓아 남에게 씹혀지며 먹혀지는 존재가 됩니다. 그것이 지혜를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임을 오늘 주님께서는 생명의 빵이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시며 우리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나는 살아있는 생명의 빵입니다.
생명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그분의 삶을 닮아 사는 것이며, 우리의 하는 사랑의 행위들은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는 성사적 삶이 되어질 것입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