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세상은 날로 혼란스러워지고 험해져가지만 지나가는 올해에는 그 어느때 보다 더했지 않았을까 싶다.

자연환경만 해도.

이곳 시카고의 여름은 연일 백도를 오르내리며 땀 흘려 애 쓴 농부들의 가슴을 태웠고 우리의 조국 한국에는 무서운 태풍이

연거퍼 쳐들어 가 온나라를 뒤집어 놓았었다.

 

자연을 탓하랴 ?  사람은 어떻고 ?

 

총을 든 이들이 사방으로 달려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선한 이, 악한 이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생명을 유린하였다.

총 대신 쇠창살을 든 하얀 가운을 입은 이들도 엄마따라 찾아온 어린 생명들을 두번씩 생각할 것도 없이 마구 훼손하였다.

 

살림살이는 또 어땟나 ?

 

참으로 힘들었다고 장사하는 이들도, 사업하는 이들도 직장에서 밀려난 이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어쩌랴.

그렇게 힘들때에도 이보다는 덜 힘들었을 적에도 세월 하나만큼은 한치의 어김도없이 잘도 흘러서 갔다.

 

그렇게 해서 나무에 걸린 마지막잎새처럼  벽에 걸린 달력도 달랑 하나만 걸려 새것을 기다린다.

새달력이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해줄까 ?

그래도 새것이 걸릴 그시간을 기다리게 한다.

새날엔 우리에게 좀 좋은 것을 가져오리라는 (희망)을 걸 수 있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희망이 현실이되기를 바라기위해서 우리는 무엇으로 준비하면 옳을까 ?

 

우선 참으며 기다리는 인내를 갖자.

 

가난과 왕족들의 핍박으로 고통받던 러시아의 백성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위해 푸쉬킨은 이렇게 충고했었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

 

좋은 날이 오기를 바라자면 우리는 그렇게 반드시 되리라는 (꿈)을 꾸자.

악몽이 아닌 아름다운 꿈을 꾸자.

 

 

” 아름다운 꿈 깨어나서 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라

부질없었던 근심 걱정 다함께 사라져 물러가면 벗이여, 꿈깨어 내게 오라. “

( 포스터의 Beautiful Dreamer 의 노랫말중에서 )

 

속이 답답하고 맘이 편치않아 방안에서 머물기 힘들어질 때 창을 열어 밤하늘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반짝이는 별빛을 보면

내마음은 위로를 받게될지도 모른다.

 

근심 걱정에 쌓여있는 나에게 꿈깨어 오라는 우리의 주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그곳에서 내마움을 비추고있을지 모른다.

 

 

( 참된 기쁨 )

 

당장에 꼭 있어야만 되는 돈 삼십불이 수중에는 없고 아무리 궁리를 해도 어디 찾아가서 구할 길이 없는데 그래도 나보고 기쁜마음을

가지라면 참으로 기가 찰 것이다.

 

내 아이가 몹씨 아파 앓고있는데 보험이 없어 병원에서도 안받아주려는데 나더러 그래도 기뻐하란다면 울화가 치밀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서 슬픔에 잠겨있는데 장례식장에 찾아온 이들이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웃으며 떠들썩 거리기만

한다면 슬픔에 외로운 마음마저 더 해질지도 모른다.

 

전에 밀려닥친 마음의 고통과 그로인한 서글픔에 짓눌려 밝은 대낮에도 어두운 밤처럼 느껴지던 시절에 어느곳에서 아는이들 몇이서

자신들의 즐거운 일을 얘기하며 박장대소 하고 있었는데 당연한 일을 보면서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아닌 그들이 이상스럽고

비정상처럼 느껴진 경험을 했던 기억이 있다. 땅으로 기어들고싶은 외로움을 맛보았었다.

 

이와같이 이 세상은 많은 경우 나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마음이 나의 마음과  함께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처해있는 현실이 너무나 절실하기 때문에 세상도 다 나와 함께하며 위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때로는 그렇지 못한

세상이, 또  이웃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그것은 나 중심의 생각이며 오해이며 이기적일 수 도 있을 것이다.

 

나의 위로는 세상에 있지않고 하늘에서 구해야할 것이다.

그하늘에 있는 구름뒤에 숨어 계시는 하느님, 별빛으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시는 하느님, 내마음에 오시어 머무시며 어루만져 주시는 성령으로부터 나의 위로를 구해야할 것이다.

 

참된 기쁨은 언제나 나의 주변에서 좋은일, 기쁜일이 벌어져서 얻게되는 그런 기뿜가운데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슬픔 가운데에서도, 어려움가운데서도, 고통속에서도 그리고 나와 함께하지 않거나 동의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서도 

그 모든것을 다 견디어내고 그 모든것을 다 받아 내안에 수용하고 용해시켜 이겨낸 나머지 그 안의 깊은 곳으로부터 얻어지는 

위로와  그때 내마음을 찾아오는 기쁨, 그것이 아마도 나의 주님이 나에게 주실 위로요 기쁨일지도 모른다.

사막에 내몰려졌던 고달펐던 내가 가슴을 두드리며 쏟아지는 눈물로 회개하여 업드려 찾는 위로자께서 어찌 나를 안아주시지 않을손가. 어찌 나에게 위로와 기쁨을 안겨주시지 않으랴.

 

이집트로 바빌론으로 이리저리 쫒기고 또 온몸을 찟겼던 이스라엘을 안아주신 하느님,

잘났다고 집을 뛰쳐나가 돼지먹이까지 구걸해 먹었던 그 아들도 되돌아오자 기쁨으로 잔치를 열어주셨던 주님.

 

나도 그런 위로와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과연 지난 한해의 삶을 꾸려왔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되돌아보며 

새달력으로 바꾸어 걸려는 이시간에  부끄럽기만한 나의 참모습으로 감히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고상을 올려다 보며

그래도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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