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뚱맞은 어머니와 예수님
생뚱맞다 – 국어사전에 따르면 “(하는 짓이나 말이)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엉뚱하다“는 뜻이다.
오늘 성서를 읽으면서 생뚱맞은 한 어머니를 만나고 생뚱맞은 자식들을 만나고, 생뚱맞은 제자들을 보면서
생뚱맞은 내 자신을 만난다.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극성맞으리만치 무모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의 성서말씀에서는 생뚱맞아도 너무 생뚱맞다싶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던 중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제자들에게 말씀한다.
하지만 한 어머니는 그 말씀엔 상관없이 당신이 왕국을 세우시거든 한 아들은 당신 왼편에 또 하나는 오른편에
앉게 해달라는 엄청난 청탁을 예수님께 드린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이유를 잘못짚어도 생뚱맞게
잘못짚었다. 어떤 때 어머니들은 얄미우리만치 시도 때도 없이 그들 자식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
거기에 자식들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한 사람이 처참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데
염치도 없이 아이들 미래를 청탁 한다. 그것도 선생님께 아니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분의 죽음 앞에서……..
얄밉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생뚱맞다고 해야 할까?
‘나실 때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아는가?
어머니는 그래서 우리에겐 고향이다. 그분이 살아계시던 돌아가셨던 영원한 고향이다. 그들이 생뚱맞은 것도
염치없는 것도 당신체면도 모두가 자식들을 위해서기에 그들은 자식들에겐 늘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들이시다.
그래서 그들의 생뚱맞음은 얄미움을 넘어 귀엽기까지 하다.
그녀의 자녀인 제대베오의 두 아들도 생뚱맞기는 매일반이다. 아직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이 앉을 자리에만 연연한다. 하기야 요때만 잘 넘기면 출세가 보장되었는데 못할 일이 무어냐 싶어
마실 것 못 마실 것 구분 없이 그저 마시겠노라고 덤벼든다. 그들의 대답을 들은 제자들 역시 생뚱맞다.
누가 으뜸이 될 것인가를 두고 싸움벌이는 그들의 마음을 보고 죽음을 예고하신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 스승인 예수는
심각하게 당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데 제자라는 것들은 누가 오른편에 또 왼편에 앉을 것인가에 기분 상해하고 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하지만 예수님의 인내 또한 만만치 않다. 그들의 생뚱맞음과 아랑곳없이 당신의 왕국의 설계를 말씀하신다. 누가 진정한
으뜸인지, 누가 진정한 통치자인지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가르치신다. 봉사는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해서 봉사는
선물 보따리 풀어놓고 사진 찍어대며 폼 잡아대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신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겸손히 말하고
아랫사람으로 살아갈 때 참 지도자가 되고 참 어른이 된다는 말씀이다. 세상의 통치와 그분 나라의 통치는 차원이 다르고
서로 멀어도 너무 멀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에 머무는 작은 나라가 아니고 우주보다 크고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광대하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해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고 바랐던 로마제국에서의 해방은 그래서 차원이 다르고 격이 틀린 해방이다.
유관순 누나와 김구 선생님도 훌륭하신 분들이지만, 차원이 다른 해방을 선포하시는 그분의 해방은 너무 크다. 본질에서의
해방은 국가의 해방과 견줄 수 없을 만치 중요하다. 진정한 해방은 죄의 억압에서의 해방이고, 참 기쁨은 섬김에서 오며,
다스리려면 다스림을 받아야 하고, 섬김을 받으려면 섬겨야 한다는 그의 왕국의 설계를 어찌 범인들이 이해할 수 있으랴?
예레미아의 외침이 바로 그분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주님, 제 말씀을 귀담아들어 주시고 제 원수들의 말을
들어보소서. 선을 악으로 갚아도 됩니까? 그런데 그들은 제 목숨을 노리며 구덩이를 파 놓았습니다. 제가 당신 앞에 서서
그들을 위해 복을 빌어 주고 당신의 분노를 그들에게서 돌리려 했던 일을 기억하소서.” 당신 삶을 송두리채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참 기쁨을 위해 내 놓았건만, 못 알아듣고 못 보는 것이 무슨 큰 자랑이나 되듯 지도자들과 높은 양반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간직하기위해 적반하장으로 그분을 죽이려든다.
오늘, 들어도 듣지 못하는 내 귀가 아니 마음이 아쉽다. 보아도 보지 못하는 내 눈이 아니 마음이 아프다.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내 몸이 안타깝다. 내가 커져있어 할 수 없고, 남이 크게 보여 풍선처럼 부풀려버린 내 자신이 가엾기까지 하다.
생뚱맞은 그들 모두가 내 모습이기에 눈물 나도록 답답하고 부풀려진 내 존재가 쥐구멍보다 더 적게 보임은 그저 마음의
환상이 아니고 잘난 척 우쭐거림도 아니며, 글 장난은 더더욱 아니다. 나도 생뚱 맞아도 너무 생뚱 맞다!
– Fr. 김 두진(바오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