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만 우는 바보

( 건강이야기 읽다가 일주일을 더 늙은 이야기)

 

지난번에 걷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삐끗하였는지 다리를 절룩이게 되었다.

곧 괜찮을지 싶었는데 낫지를 않아 의사를 찾아가려고 광고를 뒤적였다.

 

(발, 발목전문의)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내가 아픈곳을 만져보니 무릎하고 발목 사이 같았다.

(무릎과 정갱이 사이전문의) 는 없을까 눈을 부벼가며 찾다가 그만 말았다.

나는 왜 다쳐도  꼭 해당사항도 없는 곳을 골라서 다치고 그러는지…

 

지난번 게시판에 (건강이야기)가 올라 왔을때

건강문제라면 별 관심도 없는 척하던 나지만 아무도 안보는 틈을 타서 얼른 들어가 보았다.

건강해진다 는데 싫어할 사람 손을 드세요 !  아무도 안든다.

 

그런데 난 그 이야기에 들어간 일을 곧 후회하고 말았다.

 

난생 첨 들어보는 요상한 이름의 음식들,

또 그걸로 만드는 골치 아픈 방법들…

 

난 첨부터 그런 걸 살 생각도 없었으면서도  그냥 흥미로워 한번 가 보았지만,

그것들을 머리속에 익히려면 골치가 아퍼서 읽기 전보다 꼭 일주일은 더 늙고 말 것 같았다.

어디 일주일을 늙기만 할려구 ? 건강도 읽기전보다 더 나빠지진 않을지… 글세.

 

오, 마이 갓 !

나, 차라리 그냥 조금 덜 건강하게 그렁저렁 살래.

 

현대사회는 정보가 연일 쏟아져 나와 그 많은 정보들에 깔려 숨을 못쉴 지경이다.

사방에서 매일 제공해주고 있는 고마운 이들에 의해 이제 우리는 웬만한 서투른 의사, 영양사는 뺨을 쳐도 될만큼 많이 알게되었다.

 

지금 아는 지식만으로도 아마 우리는 세종대왕 보다도 더 잘차려 먹고 건강이 넘쳐 이웃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어야 할지 모른다.

술, 담배 줄이거나 끊고 소금과 고기 좀 덜먹고 과식하지 말며… 대충 그런 지식들일 것이다.

 

하느님이 사람이 먹으라고 만들어 주신, 땅의 자연스런 소출은 다 건강에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가 육신의 건강을 챙기려는 그 왕성한 정성에서 십분의 하나 만큼만 나의 영을 건강하게 하는 일에 사용한다면

”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을 것이다. ” 하고 그 이야기에 은근슬쩍 들어가고서도 안그런 척 했던 나에게 일러주었다.

 

 

( 감사하세요 )

 

당신이 지금 늙어간다고 너무 서러워 마세요.

조금 후에 곧 ” 아, 내가 그때만큼만 덜 늙었더라면. ” 하게될 테니까요.

 

당신이 지금 새파랗다고 노인앞에서 너무 목을 빳빳이 세우지는 마세요.

그 노인도 당신같은 때가 바로 엊그제인 걸요.

 

지금 몸이 아프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너무 절망스럽다 하지는 마세요.

바로  옆병실에는 다가온 죽음과 싸우면서도 신음소릴 숨기는 이가 있어요

 

식구는 넷인데 방이 둘 뿐이라고 한숨을 쉬지는 마세요.

만약 지금보다도 더 사정이 나뻐졌더라면

” 아, 그때 방이 둘이나 있었을 땐 우리가 얼마나 행복했나. ” 뒤돌아 볼지도 모르니까요.

 

오늘 온도계 바늘이 백도 가까이 서 있다고 짜증하지 마세요.

작년 여름 물난리로 전기가 끊기고 음식들이 쓰레기가 되어 나갔던 때보단 낫지 않아요 ?

 

아니,

 무엇보다 지난 추운 겨울에 집 골목어귀에서 도움을 청하며 날 바라보시던 

예수님을 그냥 외면하며 지나쳤던 기억에 괴로워히고 있진 않으세요 ?

 

 

( 세 번만 우는 바보 )

 

유교사상 때문이였는지 우리네 조상님들은 

사내대장부는 평생 세번 이상이나 울면 졸장부라 하고 울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참고 근엄한 표정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쳐 왔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전통을 물려받으려는 꿈을 꾸어본 적도 없는데 웬일이었는지 아버지, 어머니를 이세상에서 여위는 자리에서 조차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했던 것 같다.

 

불효였음을 겉으로 나타내 보이려는 무의식중의 행동이었는지 이별의 자리에 가서야 겨우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는 자태가 

그동안의 불효를 가리려는 오히려 위선 같다는 무의식이 작용하였는지 지금도 내마음도 알아낼 방도가 없지만

아마도 삭막한 삶의 내용이 가슴도 메마르게 하고 눈물샘을 말려 놓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슴도 마른장작 같게 쫄아들고 남아있을 눈물도 없을 나이가 되니 어깨를 들먹거리며 가누지 못하게스리 찡하는 일이 자주

찾아주는 괴이한 일을 보게된다.

돌아보니 못나고 부끄러운 삶이 나를 뒤늦은 회한으로 이끄는 것일까 ? 

아니면 십자가에 올려지신 주님앞에 나열하기엔 너무 많은 죄를 그렇게 고하고 용서를 구하고푼 바람 에서일까? 

 

하지만 사내라고 태어날 때 한번 울고는 울고싶어도 참아야 하고 또 웃을 일도 삼켜야한다면 그게 옳다는 건가 ?

 

그동안 우리 한민족은 흰옷만 입고 감정을 숨기면서 맺힌 한만 많아서 늘 슬픔에 젖은 것으로 알아왔다.

외세에 이리 쫒기고 저리 시달리며 살아와서 편한 마음으로 앉아 지낸 여유는 없어서 일지 모른다.

환경이 달라진 우리네의 지금 모습은 얼마나 잘 울고 잘 웃으며 잘 떠드는가 ?

 

이젠 세번만 울어야한다는 틀에 갇혀 있지말고 읏어야할 땐 웃고 슬플 땐 울기도 하자.

율법때문에 단지 세번만  울고 네번째는 참아넘긴다면 당신은 바보이다. 

나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이웃에게 꼴불견이 될 땐 미소로 웃자.

내가 슬프다고 울음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이웃에게 소란으로 들리면 가슴으로 울자.

 

내 좋은 일에만 웃지말고 이웃의 기쁜소식에도 박수치며 웃어주자.

내 슬픔만 알리지말고 이웃의 고통도 내것처럼 위로하며 함께 울어주자.           

                

목록

'자유' 게시판 최근 글 목록

제목
작성자
날짜
fabiola
2012.07.13
모이세
2012.07.04
fabiola
2012.06.28
모이세
2012.06.25
Admin
2012.06.15
모이세
2012.06.15
모이세
2012.06.06
모이세
2012.05.28
모이세
201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