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동네 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기 전에 성가대원들이 그날 부를 성가들을 연습하고 있었다.
지휘자는 미사를 기다리고 앉아있는 교우들에게 연습을 따라하며 함께 부르자는 제스처를 내보냈다.
미사가 시작되자
연습때문이었는지 문외한인 나의 귀에도 더욱 앙쌍블이 잘 이루어지며 아름답다는 느낌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새삼스런 마음으로 성가대원들을 바라봐았다.
한 삼십 명도 더 되는 것 같은 성가대대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주 젊은이들까지 어우러져 구성되어 있었다.
비교적 물질적으로도 풍족해 보이는 교회의 성가대이면서도 유니폼도 없이 모두 평상복이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은 언제고 어디서라도 아름답다.
우리 성당에 가 앉아서도 우리 성가대원들의 그 정성스런 찬양을 듣고 있노라면
나처럼 무딘 마음도 하느님의 사랑이 전해받게 되고 또 하느님을 사랑하고픈 마음이 된다.
그래서 성가대원들은 아름다운 이들이다.
어디서 그런 아름다운 찬양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그이들 안에 하느님이 심어주신 달란트 때문일 테지?
딱히 그 때문만도 아닐 것 같았다.
그럼?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
지휘자는 그이대로 또 단원들은 그이들 나름대로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그 일에 정성을 다 하고 있었다.
그 정성을 다 하고 몰두하는 하는 그이들의 마음이 곧 하나를 이루고 그 하나된 마음이 바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여겨졌다.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얼굴이란 어떤 모습일까?
성형외과에서 방금 만들어내서 그래서 아직도 따끈따끈한 그 얼굴일까?
그것은 얼른 봐서 직감적으로 예쁜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젠가,어디에서, 잡지에서, 영화에서 봤던 그 예쁘던 얼굴과 혼동스럽도록 닮은 그 얼굴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인스턴트 식품처럼 지금 잠깐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시키고 만족감을 던져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잠깐만 지나면 곧,
식상하게 만들고 진력나게 만들고 그래서 비위가 상하게 할 그 얼굴일지는 모른다.
결코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얼굴은,
아마도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내 정성을 다 하는 몰두하는 그 모습일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 자체가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그런 일이어야 할 것 같다.
언젠가 들었던 노랫말이 생각난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안에 무심코 그려 넣는 그 얼굴이
내 마음따라 피어나던 꿈의 모습이고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는 모습이라면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 만난 일 없는, 내가 만나고 싶은 연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내가 아직 직접 뵌 일이 없는 나의 하느님의 모습읿지도 모른다.
그럼,
내 자신의 모습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걸까?
아름다운 얼굴일까, 추한 얼굴일까?
내 마음의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비추어 본다.
아무리 뜯어보고 또 보고 후하게 점수를 주고싶어도
양심으로는 결코 아름답다 말할 수 없다.
아!
부끄럽다.
공연히 아름다운 얼굴얘기를 끄집어내서 내 추한 얼굴만 들통나고 말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