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뒷꿈치

( Achilles heel )

서사 시인 호모레스가 기원전 800 년전에 썼다는 일리야드의 주인공 아킬레우스.
그는 완전에 가까운 인물이였으나 단 한가지 약점, 바로 (발뒷꿈치)가 허약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놓고 무고한 많은 생명의 희생을 볼모로 벌인 전쟁이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었다.
정복자 아킬레우스는 그의 약점인 발뒷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그 이래, 후세의 사람들은 자신의 또는 남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내어 말할 때
( 아킬레스의 건,腱 )을 들먹이게 되었다고 한다.

피조물인 시람에게 완전한 인간은 존재할까? 아니면 가능할까?’
물음이 어려우니 그 답 또한 어렵게 보인다.
아마도 (불가능)하고 또 동시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반드시 한가지 이상의 약점을 지니고 살아가므로 애초부터 완전을 지향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수도 없이 많은 호걸 영웅들이 완전은 고사하고라도 더 많은 자신의 욕망을 자신의 생애동안 이루어보겠다는 무모함을 무기로 시도하였어도 결국 현실적으로 얻어낸 것은
뒷꿈치였건 또 다른 것이였건 약점인 인간의 한계뿐이었을 것이다.
(불가능)만 재확인 한 셈이다.

그런데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 사람에게 (완전함)을 추구하며 그 완성을 지향하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하시고 명하신다.

우리의 삶속에서 계속 쌓아가는 (빚), 그것을 단 한닢까지도 모두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5,26)
내가 지는 빚이란 죄 아닌가?

(세례)의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을 확인하는 성사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흠이없는 완전이며 완성의 길이다.
이것은 우리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어렵다)는 말은 (불가능)을 뜻하지 않으며 (가능)에로의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연 나의 아킬레스 건은 무엇일까?
재물욕, 권세욕등의 탐욕? 꺼지지않고 타오르는 성욕? 시기, 질투? 위선? 교만?…
끝도없을 허욕들, 그 들중 하나이거나 아니면 그 모두가 나를 붙잡고 있는 뒷꿈치일 것이다.
한 번에 모두를 털어내는 일은 범인에게 무리할 것이나 하나씩 하나씩은 보다 덜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작)이 그 (절반)이라고 했다.
세상의 탐욕을 덜어내고 그 비워낸 자리에 성령께서 들어오시게 하면 완성에로의 길은 열리고 그 완전에로의 여정은 시작이 아닐까?  
보장도 없는 내일 아침이 오기까지 미루느니 바로 (오늘),  아니 (지금)에 시작하자.

(오디세이)

바로 같은 호모레스의 작품속에서 오디세우스(Odys’sey)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도 20 년간이나 방황끝에 고향으로 돌아오게되었다는 방랑의 대명사처럼 된 이름.

내 자신을   돌아보자니 20 년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도 나의 아킬레스 뒷꿈치를 아직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거나 알아내고도 그것들에 대한 미련과 타성때문에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며 하나도 덜어내지 못하고 오디세이에서 맴돌고 있는 것일까?

필경 그 시간이 되어서야 주인 앞에 고개를 떨구고 서서 이렇게 후회할 모양이다.

” 아! 난 왜 이 모양이란 말인가? 그 때 그럴 껄!   …….껄 …….껄”

You are going to be way too late to say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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