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어디로 가야하나

세상이 혼란스럽다. 어지럽다.

둘러보아도 눈을 감아도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전에는,

어느 특정지역은 위험하다는 경고가 있어 그곳을 피하는 것이 곧 위험에서 벗어나는 첩경인듯 하였었다.

지금은 아니다. 더이상 위험한 곳, 안전한 곳이 따로없어 보인다.

언제 어느 틈에  불청객, 칩입자가 닥칠지 모를 불안속에 살고있는 내집인들 확실한 피난처일까.

 

(나)와 또다른 (나)가 합쳐진 (우리)는 언제부터, 어쩐 연유로, 왜 이다지도 철저하게 타락하게 되었을까?

나는 어디에서 썩어나기 시작한 걸까.

얼핏 보면 개인도, 한 나라마저도 머리가 썩기 시작하니 차츰 발밑까지 썩어내려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 썩은 머리통도 눈으로 볼수없는 그 마음이 스스로의 상한 마음에 의해서 오염되기 시작한 게 그 원인이라 말해도 되겠지.정치한다는 사람들만 썩었을까.  안 그런 거 같아. 많은 아버지들이, 엄마들이 썩으니까, 회사의 장이 썩으니까, 공공기관의 장이 썩으니까… 그들을 바라던 아랫사람들이 우르르 따라간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의 순서였을까.

어느쪽이 먼저였으면 뭔 상관이랴. 바로 (나)가 썩었다는게 키포인트겠지.

 

상아탑이라고 불리는 곳에 비싼 월사금내고 들락거리는 이들도, 심지어는 주일에 성전에 모여와 함께 손에 손잡고, 주여,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입으로 말하며 노래로 찬양하는 (나)도 성전을 나서는 순간 썩은 세상과 손에 손잡고 발을 맞추지는 않는다고 자신있게 (나)는 고백하고 있는 걸까?

(나)는 과연 빛이고 소금인 걸까?

그렇다!고  나는 이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주님을 믿는다기 보단 성당에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더 어울려 보인다. 난 코흘리개 시절에도 역시 성당에 다니는 아이로 불렸으니까 그만하면 관록이 붙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인 셈이다. 그것이 나의 훈장이 될수 있다는 걸까? 천만에.

 

오염된 내 마음을 어떻게, 어디로 가면 정화할수 있을까?

눈을 감는다.

지금보다는 덜 오염됐었을지 모르는 시절로 거슬러 되돌아 가본다.

 

 

IMG_4409.JPG

 

숲이 있고 강물이 있어 얼핏 평화스러워 보이는 환경에서 음악까지 있으니 피난처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곳에 진정 평화가 있어 오염된 내마음이 정화될수 있는 걸까.

어쩌면 한시적으로 그럴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더라도 그건 정답일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뿌리를 찾아야겠다.

고향을 찾아야겠다.

나를 내시고 내가 엄마의 탯줄에 달리기 전부터 나를 기억하신다는 나의 하느님, 나의 주님, 나의 고향.

 

그리하여 나를 정화하고 그 깨끗해진 마음을 공기중에 섞어 날려서 이웃에게도 저멀리까지도 날아가는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를 이루어지기를 바라자.

(나)가 변하면 이웃이 변화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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