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날에
맛 있게 부쳐주시던 그 기억을 더듬어
저의 서툰 솜씨로 만든 부치기를
간장에다 덤뻑 찍어 먹으며
당신을 생각합니다
어머니 날에
뒷마당 한 구석에
이름도없이 수줍은채 피어있는 한 송이 꽃과
마주 앉아 소곤 소곤 이야기 꽃을 피우며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어머니 날에
아무도 없는 성당안에 살며시 앉아
여전히 십자가에 달리신채
그 너른 방을 홀로 지키고 계신 이를 바라보며
주님의 어머니를 떠 올립니다
어머니 날에
저의 나이야 어찌됐건 “엄 마 아 !” 그렇게 부르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 땅에 저와 함께 계셨을 때도 불효했다가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인 자식이
우리 모두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
당신 옇혼의 평안을 위해 기도합니다
” 엄마, 주님안에서 평안하세요. ”
Happy Mother’s day to you, all.
* * * * *
어머니 날이 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연락조차 끊어졌지만 그의 이름은 데이빗이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큰 회사의 간부로 일 하면서 그야말로 잘 나가는 터 였는데 하루는 일자리를 옮겼는데 들려서 격려해 주겠느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가서 보니 아주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작은 사무실에 전화 받는 여직원하고 달랑 둘이 반겨 주었습니다.
눈이 둥그래진 나에게 나지막히 그러나 패기에 찬 목소리로 들려준 사업계획을 듣고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의식있는 용감한 젊은이가 있다는 것에 크게 감명 받았었습니다.
그가 하고자 했던 (일)은 기본적으로 아기들에게 “엄마 젖을 먹이자 !”는 캠패인 이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아기들이 소의 젖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현실이 그냥 보고 있기엔 견딜 수 없어서 좋은 직장과 개인의 영달을 다 접고 세상에다 대고 외치고 싶어서 자신의 사비를 털어 거리에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 비슷한 생각은 있었으되 비겁하여 머뭇거리고 용기도 없었던 나는 그를 마음으로 성원하는 것으로 조금은 빚을 갚을 것 같은 생각에 자주 들려 손을 잡고 흔들며 용기를 꺽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모든 자기희생을 딛고 열심히 뛰고 있었습니다.
몇해가 지나고 어느날 그는 많이 피곤해 보였습니다.
정부의 그랜트를 신청은 해 놓았지만 어느 하세월에 지원이 나올지 모르고 퇴직금과 저축금을 다 꺼내 쓰고 버텨왔는데 이제 바닥이 나서 집을 팔아 충당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유감스럽거나 억울할 일은 하나도 없는데 하려는 일에 다소라도 차질만 안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고 그가 보낸 엽서가 배달되었습니다.
” 의욕을 가지고 이것도 하느님의 뜻에 맞는 하나의 의로운 사업으로 생각하고 신나게 뛰어왔는데 이제 내가 가진 기력은 쇄진하고 더 나아갈 힘이 없어 일단 여기서 이 일을 접고 떠나갑니다. 언젠가는 어떤 이에 의해서 이 일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이루어지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 데이빗- “
그때 아팟던 가슴은 이 맘때가 되면 도지고는 합니다.
그가 어디에서 살고 있던지 의기 꺽지말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소의 젖이 담긴 병을 아기에게 물리고 있는 엄마를 바라보면 그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