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거르던 저녁을 먹었더니 그만 나른해저서 TV를 켰다
마침 좋아하는 자연세계속의 동물프로그램을 보여준다.
흠, 저거라면 나한텐 Yummy 소화제인데, Why not?
엄마오리가 알을 낳으려고 둥지를 틀었다.
폭군의 습격이 염려되어 높은나무 중턱에 좋은자리 찾아내어 알을 낳았다.
알을 품고 부터는 꼬박 배를 골았다.
(날 이렇게 만들어 놓고 뒤도 안돌아보고 떠나간 남편시중을 기대한다는건 사치스런 희망사항 아닌가?)
정성과 고행으로 품었던 알 속에서 “삐약”거리며 귀여운 아기오리들이 두터운 껍질을 깨며
하나씩 둘씩 비집고 나온다.
아기들에게 물릴 젖이 없는 엄마오리는 앉아서 굶길수는 없었다.
” 날 따라서 뛰어 내려야해, 그래야 사는거야, 알아들었지?”
한국말로 그렇게 해봐야 안통한다는걸 아는 엄마오리는 그런 시늉만 하고는 먼저 뛰어내린다.
올려다보며 기다려도 기척도 없다. 엄마가 할수있는건 “꽥 꽥 “
그래도 오분 먼저 태어났다고 큰오빠가 문앞으로 나와 내려다본다.
엄마얼굴이 까마득히 보이고 앞이 노랗다. 멈마는 화 나게 하지말라고 채근한다.
엣따 모르겠다. 눈 질끈 감고 공중으로 떠올라 떨어진다.
뒤를 따라 둘째, 셋째 ….자그마치 칠남매.
앞장서 가는 엄마는 말도 없이 물속으로 첨벙 뛰어든다. 큰오빠가 소릴 친다.
” 아니, 엄마는! 우린 수영도 안배웠는데 무조건 뛰어들면 어떻하라구? “
” 야! 오리엄마 수영 가르치는것 본일있냐? 잔소리말고 뛰어들어.”
이렇게 해서 앞으로 즐거울때도 괴로울때도 많을 오리가족의 새삶은 시작되었다.
* * * * * * *
오리 칠남매를 보니 칠남매 우리를 낳아 키워주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칠남매를 낳아 키워 자리잡게 해주려던 그 고향 이북은 공산당이 나타나 핍박하므로 더 이상 살곳이 못되어 업고 안고 손에 끌고하여 걸어서 서울까지 피난하여 먹여서 학교엘 보내고 하던차에 육이오가 터져 또 다시 모두 끌고 이리 저리 도망끝에 부산까지 밀려갔던 끝에
이제는 어쩌다 미국에까지 흘러와 어느새 머리에 흰서리 색갈을 뒤집어 쓰고 살고있는 우리 칠남매를 키워주신 (엄마)라고 부르며 손을 잡아보고싶은 그 어머니가 생각난다.
칠남매가 되고보니 언제나 벅적대고 시끄러웠다.
바로 위아래 끼리는 무슨 다툴만한 제목거리라도 없나 찾아내듯이 입씨름으로 소음공해를
늘 만들어 내었다. 두살 밑인 내동생은 왜 자기는 언제나 형이 물린 옷만 입어야되느냐고 도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투덜대다가는 내알밤 하나씩 얻어터지곤 했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그 말을 증거하기로들 했었던것같다.
칠남매에서 한가운데였던 나는 왜 집에 있어도 찾는일 없고 밖에 나가도 안 찾는걸보면
어디 다리밑에서 주어왔냐고 잠시만 안보여도 찾는 막내나 맏이 그 그늘에 가려 나는 있으나 마나하다고 불량배들과 어울려 이동네 저동네 싸움박질하고 다니며 어머니속을 썩혀준 부끄러운 청소년시절도 지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것 있느냐고 나를 불러 안아주시며 “사실응 내가 널 제일 좋아하고 사랑한단다.”하시며 심통난 나를 다독거려주시곤 하였다.
어머니의 그사랑처럼 내리는 비처럼 누구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도 때로는 남보다 내가 덜 받고 있다고 투정섞인 불평을 말 하는것은 우리 피조물의 한계일것이다.
특히나 요즈음같이 (나는 소외되었다), (나는 외돌이다)하는 빗나간 마음이되어 이웃을 미워하고 세상을 저주하는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이때 보다 더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주는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되어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해보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