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갈 때까지 성경 읽는 일과 격려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힘쓰시오.” ( 1디모데오 4: 13 )
에디스 헌터는 아이와 함께 다만 한 불럭이라도 걸으면서 격려가 되는 말이나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일이 이다음에 아이가
자란 후에까지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 합니다.
또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간에 곁으로 다가가서 손을 잡아주며 셩경 한 구절을 읽어주거나 잠깐의 짧은 기도는 훗날 그아이에게
큰 힘이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엄마의 아이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위대한 힘일지는 열번을 거듭 맗한대도 모자라지 않을 것 입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을 잠깐 말하지요.
제가 아직 어렸을 적에 저의 엄마는 김치꺼리나 좀 무거운 장보기를 하려는 날에는 그걸 저에게 나누어 들게하려고 맛있는 짜장면을 점심으로 사주마고 꼬셔서는? 저를 데리고 가시곤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짜장면 맛과 장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과 맞교환할 수는 없으므로 기꺼이 따라가고는 했지요.
그런데 가고 오는 도중에 흔히 열두시가 되었고 그 시간이면 명동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때가 저에겐 참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걷다가 말고 성당쪽을 향해 성호를 하시고 바로 삼종기도를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삼종기도는 응답하며 서로 나누어 하는 기도가 이닙니까 ?
엄마가 먼저,” 주의 종이 마리아께 보하메, “( 옛날식) 그러고는 저를 바라봅니다.
그 다음을 이어서 하라는 신호이지요.
저는 죽을 맛입니다.
지나는 사람들이 우릴 흘깃 흘깃 쳐다보는 길바닥에서 삼종기도를 따라하라니 어찌 않그렇겠어요 ?
그려면 엄마는 저에게 짜장면을 상기시키며 안먹어도 괜찮겠느냐고 약을 올리시지요.
그리고는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 화가 나 있는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지요.
” 사람들이 너를 쳐다보는 것과 네가 기도하는 일이 무슨 상관이 돼느냐 ? 네가 그사람들의 길을 가로막아 방해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때 그렇게 창피스럽다고 생각됐던 그리고 못마땅스러웠던 엄마의 기도가 이제와서는 저에게 큰 응원가가 되고 있지요.
아이가 아직 곁에 있을 땐 함께 또 진학이나 직업때문에 타지역에 있으면 그 아이를 염두에 두어 기도한다면 엄마의 기도는
성령께서 받아 전달해 주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