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님의 말

  ( 여성의 힘과 여성의 허리둘레 – 그 함수관계 )

 

여인들을 남정네들 못지않게 존중하며 사랑하셨던

예수님과는 달리 예수님시대는 물론 20 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아직 세상은 남성절대권력이 당연시 되는 사회였었다.

 

그런데 남성의 그늘에서 살아가던 여인들 특히 서양사회의 젊은 여인들은 몸매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허리를 띠로 잔뜩 옭아매어 잘룩한 허리를 만들며 살고 있었다.

그래서 잘룩한 허리는 젊은 미녀의 필수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거지로 물리적으로 졸라매서 만들어 진 허리는 거리에 나가 남자들의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움을 주기는 할 지언정 

그 여인 자신에게는 커다란 희생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이였다.

음식을 필요한만큼을 먹지도 않지만 먹은 음식이 여러 기관을 거치며 소화작업을 하는데 걸림이 되고 그것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건강에도 많은 역작용을 하므로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스스로를 속박하고 고통을 얻으며 남성들로부터 받는 차별대접과 겹쳐 

대남성 열등의 생활을 감수하며 살아간 셈이였다.

 

노예처럼 살던 노라가 (인형의 집)을 도망쳐서 여성해방을 왜쳤던 때를 기점으로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남성들의 그늘에서

숨을 죽이며 여성의 미덕이라는 명분이라는 그럴듯한 말에 짓눌려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거리로 뛰쳐 나왔다.

 

” 어쮸, 어랍쇼 ! Hey, What’s going on here, Uh ? “

그렇게 놀라고 입을 못다무는 남자들에게 아랑곳 할 여인들은 이제 집안에 있지도 않았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아니 육체적으로 힘을 겨루는 스포츠에서 마저도 여인들은 이제 당당히 경쟁하며 남성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나아갔다.

 

남녀동등권 이란 말은 이제 더 이상 새삼스런 단어도 아니었다.

놀라운 변화였지만 또 그것은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그 발자취를 추구하며 따르는 공동체사회라면 남녀의 인격적 대등은 너무나 늦었다 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어 보인다.

작금의 사회는 남녀평등이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적절한 환경으로 변하여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권의 신장이 거세게 커 가면서 상대적으로 남성사회가 위축되고 열위로 변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 변하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렇게 되었다고 말해도 결코 과장이 아닌 게 현실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바로 느끼고 알 수 있지 않은가 ?

우리의 가정들을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 보자.

얼마나 많은 아직도 (가장) 이라는 명칭을 유지하는 남자들이 어부인의 눈치를 살피며 주눅들어 고개를 숙이고 살아가고 있을까 ?

( 그러나 그 문제는 일단 여기서 덮어야겠다. 오늘 말하고 싶은 주제내용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그렇게 사회가 변해오면서 

이제는 허리를 잘룩 졸라매는 여인은 더 볼 수 없다.

어디에서 그 동기가 부여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추정하는 바로는 이제 여인들이 허리를 묶어 고통속에 남에게 예뻐보이려 할 이유를 잃었을지 모른다.

마음대로 허리를 편하고 자유롭게 물어주고 건강을 추구하며 그 되찾은 건강으로 거리를 활보하여 자유를 즐기고 살아야겠다고

묶어놓았던 허리를 해방시켰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 해방절 )

 

바로 오늘이 우리가 살고있는 미국의 해방절, 독립기념일이다.

가난에 찌들린 아일랜드 사람들이 메이훌라워 배를 타고  입국비자도 없이 이나라에 들어와 낯 선 그들에게 대항하는 그들보다

오래전부터 살고있던 원주민을 총과 칼의 우월한 힘으로 한쪽구석으로 몰아부치고 성조기를 꽂아 아메리카 라는 나라를

선포하였으니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하느님의 인도로 탈출했던 이스라엘의 해방절 하고는 사뭇 많이 다른 뜻을 갖는 기념일

이겠지마는 이들은 해마다 불꽃축포놀이를 하며 이날을 지내오고 있다.

 

그런데 

연일 100 도가 넘는 더위에도 시원한 물가 유원지라도 찾아 갈 엄두도 안나 방에 쭈구려 앉아 과연 (나)에게 있어서

(해방)은 어떤 것일까 ? 생각 해본다.

 

물리적으로 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일도 물론 해방일 것이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나를 옭아 매고있는 어쩌면 나 스스로가

나를 묶고 그로부터 자유함을 잃고 노예가 돼서 살고 있는 잡동사니 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해방일 것이라 생각한다.

 

분노, 짚투, 과욕, 위선, 교만, 오해, 나태, 비뚜러진 사랑, 원망, 불평, 불만족…

이루 헤아리기 어렵게 많은 쓰레기들로 띠를 만들어 자신을 밤과 낮 구별없이 꽁꽁 묶어 노예로 만들고 살아가고 있을 부끄러운 

모습이 거울을 통하면 볼 수 있는 나의 참모습이란 생각이다.

 

그것들을 벗어 버리는 일이 바로 나를 자유인으로 만드는 그날이 나의 (해방절) 이라 선언할 수 있을 것이다.

 

 

( 영감님의 말 )

 

옛날 한 영감님이 말을 기르고 있었는데 찾으러갈 수도 없는 적국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영감님은 몹시 화가나고 말에대한 원망이 사무쳤어도 어찌할 바가 없어 낙심하며 지내는데 어느날 그 달아났던 말이 

저보다도 더 젊고 튼튼한 말을 한마리 끌고는 되돌아 왔다.

노인은 너무나 기뻐했고 그 아들은 새로온 말을 타며 기쁘게 뛰어 다니다가 떨어져 다리를 부러트리고 말았다.

잠시 기뻣던 노인은 그만 또 시름에 빠지고 말았는데 나라에 전쟁이 나서 온나라의 장정들은 군에 소집을 받았지만 

그집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탓에 면제가 되어 전선에 나가 죽을 염려는 안하게 되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우리가 아마도 다 알고있는 

새옹지마 (塞翁之馬  )의 이야기 줄거리 이다.                        

 

(어디 놀러 갈 엄두도 안하고 방에 쭈구리고 해방절을 보낼바에야 새옹지마 도 생각해 보자고 날 달랬다. )

 

전에 한참 두고 먹을 국을 끓여 놓는다고 욕심 사납게 좀 큰 냄비에다 그저 몇가지 눈에 뜨이는 걸 놓고는 부대찌게 비슷한 국을

끓이고 있는데 잘못 걸려온 전화가 울려 얼른 받고 오는 그새에 국이 넘치려고 하기에 얼떨결에  냄비손잡이를 잡아 내려놓는다는 게

너무 뜨거워서 놓치며 그 꿇던  물이 온통 내몸쪽으로 엎어지고 마는 사고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뜨거운 것인지 시원한 건지 구분이 안될만큼 뜨거우니 그냥 펄쩍펄쩍 뛰기만 하다가 내다리는 볼상 사납게 상처가 난 걸 알게 되었다. 한동안은 방에서 부얶을 가는 몇걸음도 기어서 가다 시피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상처부위는 평소 잘 보일 필요가 없는 다리였으니 조금만 빗겼더라면 상처는 번지고 큰 고통이 왰을텐데

그런 참변을 면하였다. 

 

또 며칠전에는 어느 공공장소에 갔다가 미끄러운 바닥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뒷머리를 돌바닥에 치며 졸도하여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불행중 다행으로 회복되고 나온 사고도 만났다.

의사에 의하면 조금만 더 세게 부딧쳤더라면 다시 못 깨어났을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집으로 가면 모든 활동을 중단하며 며칠간 안정을 취하라 하였지만 살아난 사람은 그러고 있을 수 없으니 그의 권고를 묵살하고

볼일은 해야만 했다.

 

끝으로 말하기도 창피한 사고는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지고 어깨쭉지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

여러날 동안 팔도 움직일 수 없도록 아파도 치료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의사가 ” 어떻게 하다가 다쳤는냐? “고 물으면 ” 침대에서 떨어졌다, ” 고 해야 할텐데 

내나이를 물으며 의심스런 눈으로 계속 내 얼굴을 들여다 볼테니까.

 떨어지며 조금만 빗나갔더라면 얼굴에 큰 상처가 됐겠지만 안보이는 어깨였으니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그런 창피하고 그 잘난 사고이야기들은 

앞의 노인과 말의 이야기를 생각하기 위해 여기 불러내게 되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좋은일을, 그리고 또 때로는 어려운 일도 만나게 된다.

조심하며 예방하면 피할 수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도 생기게 마련이다,.

 

오늘

 좋은일 만났다고 내일도 또 좋은일만 찾아온다는 기약은 없다

 

또 반대로 오늘의 나쁜 일이 내일 그 나뻣던 일 때문에 더 큰 불행을 막아주는 액땜의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의 게기를 마련해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

 

욥이 말해 주었다.

“좋은 일도 주시는 하느님이신데 어찌 나쁜일을 만났다고 주님을 원망하랴. “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부활의 기쁨이 되었고 예루살렘의 파괴는 흐터져서 복음이 세상끝으로 퍼져가는 게기를 만들어 주었다.

 

(나)가 할 일은 오늘의 좋은일 또 나쁜일에 일일이 매달려 연연하기보다는 허락받은 오늘을 주님안에서 늘 새로워지기로 

내마음을 다짐하며 충실히 삶을 꾸려가는 그일일 것이란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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