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선교사요, 전교자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사요, 전교자들입니다.

 

 

우리 성당에서는 전교주일을 맞아 오랫동안 선교바자회를 해오고 있습니다. 선교바자회를 통해 얻은 성금을 선교지역에서 고생하는

선교사에게 보내는 것은 물론 청년들이나 젊은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사용해 왔습니다. 올해도 선교 바자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만두를 빚고, 서로 떠들고 웃으며 왁자지껄 하는 모습에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보았습니다. 또한 선교는 이렇게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바자회를 위해 애써주신 수녀님들, 선교회장님과 선교회원 여러분들, 사목위원 그리고 많은 봉사자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전교는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은 주님의 열 한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작별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삼년동안을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의 삶을 함께 살아온 제자들 중에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속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심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누가 진심으로 의심하는지 아닌지를 따지지도 않으시며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흔히 믿음이 약해서 전교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전교는 믿음이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완벽해지면 그 때에 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믿음이란 나 혼자 주님을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게 전교의 사명이 부여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전교란 내가 잘나고 내 믿음이 좋아 내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에" 가능한 것이라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품고 있는 전교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전교를 "많은 이들을 개종시켜 무조건 성당으로 불러들이려는 노력"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다른 종파의 사람들을 모두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들 모두 회개시켜 성당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올바른 전교가 아닙니다. 또한 전교 띠를 두르고 전교지를 나누어 주는 직접적인 전교를 경박하고, 점잖지 못한 행위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착하게 살면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성당에 오는 것이지 왜 점잖지 못하고 경박스럽게 왁자지껄 요란하게 전교를 하느냐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앙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서, 교회에 적당히 기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리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교의 의미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는 2016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전교주일 담화의 제목을 '선교하는 교회, 자비의 증언'으로 삼으셨습니다. 선교하는 교회 공동체, 변방으로 나아가라고 끊임없이 촉구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선교'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나누고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선교하는 제자로 밖으로 나아가… 선교 사명의 정신으로 복음을 모르는 이들을 돌봅니다. 교회는 '복음의 뛰는 심장인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야'(칙서 「자비의 얼굴」 12항) 합니다." 교황님은 이어 "신앙은 하느님의 선물이지 개종의 결과물이 아니다"라고 지적하시며 "예수님의 제자들은 무한한 사랑, 곧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품고 세계 곳곳의 거리를 누벼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분명하고 명백하게 교황님은 '밖으로' 나아가는 선교적 교회를 요청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인 '예수님의 삶과 사랑'을 선포할 것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선교는 곧 사랑의 선포이고, '만민 선교'는 "영적 육체적으로 위대하고 엄청난 자비의 활동"이라는 것이라는 것이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전교가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고 증거라고 한다면, 우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요? 작은 일부터 시작하자는 말씀이 아닐까요? 우리 집 앞을 청소하면서 이웃들의 앞도 쓸어줄 수 있다면,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다면,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볼 수 있다면,…… 전교는 이웃들의 필요에 관심을 보이는 일이어야 합니다. 복음서를 들고 길거리로 뛰어나가 "불신지옥 믿음천국"을 외치는 것 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자비의 하느님을 우리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교의 시작일 테니까요.

 

선교바자회를 준비하면서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전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지만 서로 돕고, 어려운 일을 팔 걷어 부치고 함께 힘을 합쳐 땀 흘리며 서로를 돕는 것, 하나의 목표를 위해 어르신부터 젊은 사람들까지 한마음으로 모여 힘들지만 서로 웃으며 격려하는 그 자리에 분명 주님은 함께 계셨습니다. 주님이 계셨기에 힘들지만 웃을 수 있었고, 서로에게 격려가 되는 말을 건넬 수 있었고, 서로의 얼굴에서 기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전교입니다. '천주 교우의 집'이라는 팻말 보다 더불어 사는 참 기쁨을 이웃에게 보여준다면, 아니 하느님의 자비를 살아낸다면 그것이 선교요, 전교가 될 것입니다. 전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시는 분인지를 세상에 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그분을 모시고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선교사요, 전교자들입니다.

 

                                                                                                                                                                                                    김 두진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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