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담뽀

( 외통수 )

 

중학교시절,

개구장이 몇 녀석들과 학교를 마친 우리들은 늘 그랬듯이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오라는 데도 없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당시 최고급백화점이었던 미도파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우리가 살 수있을만한 것도 없거니와 매점에서 우린 별볼일이 없었다.

 

5층에 다다러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진 우리는 옥상에 올랐다.

당시엔 5층건물은 가장 높은 건물에 속했었다.

매장에서도 옥상에서도 별볼일 없었던 우리중 한녀석이 가장자리에 보호막으로 만들어 놓은 담 위에 올라섰다.

그것은 사람들이 추락하는 것을 예방하려고 둘러친 너비가 겨우 한폭밖에 안되는 좁은 담이였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한 아래로 사람과 차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 위에서 손으로 중심을  맞추며 걸어가자 또 그다음 녀석이 그리고 또 다른 아이가… 그런 식으로 번갈아 그짓들을 하였다.

실수해서 떨어지는 날엔 그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무모한 짓인데 말하자면 서로 담력을 뽐내겠다며 하는 짓거리였던 셈이다.

 

지금 생각해도 등골에서 식은 땀이 날 지경인데 당시엔 전혀 겁도 내지않고 재미난 일로 여겼으니..

 

언젠가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외줄만 타고 횡단하는 줄타기재주를 생중계로 보여준 것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건너가는 그이는 대단한 재주와 담력의 소유자였던 것같다.

 

그런데 

왜 담력이라던가 재주 말고는 별의미도 없어보일 외통수줄타기안에서 오늘 이야기의 의미를 찾으려 하고 있을까?

 

사실 가만히 살펴본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늘 걷는 횡단보도나 또는 넓은 마당에서라도 실제로 우리가 발로 딛어 걷는 땅의 부분은 지극히 좁다는 걸 보게된다

넓은 들판이든 좁은길이든 결국은 걷기위해서 밟게되는 폭은 나의 발넓이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넓은 길을 걸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이되어 걷지만 외줄에 올라 걸으면 갑자기 마음안에 두려움이 생기며 

불안하여 떨어질까 무서워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매일 걷는 길이 아까 그 줄타기하는 사람의 것처럼 좁은 줄 하나에 의존해야만 한다면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한 것이 될까?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란 것도 실은 우리가 외줄위에 올라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을지 모른다.

늘 위험에 처한 삶이지만 다만 우리는 그것을 실감하지 않거나 느낌이 이미 둔탁해진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삶속에는 온갖 유혹과 위험이 도사리고 언제라도 마치 우는 사자와같이 우리를 넘보고 있을 것이다.

들판에 풀을 뜯으러 나온 양떼를 호시탐탐 노리는 늑대를 그 외통수의 위험에서 보호해줄 이는 오직 목자뿐이다.

 

아주 가까운 곳만 볼 수있다는 근시인 양이 의지할 것은 목자, 주님안에서 살아가야 할 그 이유일 것이다.  

 

 

( 파트너 )

 

위험에 처한 외줄위의 양을 말하려다 보니 또 다른 동물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언젠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 희귀동물을 구하려고 여럿 수의사가 달려들어  수술도 하고 치료해도 안되자 더 큰 병원으로 운송하려고

비행기까지 동원되고 야단법석인 광경을 보게되었다.

 

보고있었던 당사자인 나는 처음엔 희한한 장면에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했지만 차츰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면서 급기야

나는 무엇엔지 화가 치밀고 견딜 수없게까지 되었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고 내가 그 동물의 치료비를 분담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나는 공연이 분이 났었을까?

 

늘 자주 의로운 자인척 하기를 버릇처럼 하는 내가 화를 낸 것은 ‘ 까짓 동물 한마리에게 어째서 그많은 인건비와 치료비를 들이고 

비행기까지 동원하면서 난리를 피워야 한단말일까’ 일종의 공분같은 것이였다.

 

고귀한 사람도 먹을 것이 없어 아사하는 이가 매일 수도 없는데 동물 하나에 그렇게까지 하다니?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 오스트랄리아의 코알라 보호 이야기.

자연에서 나무잎사귀를 먹으면서 살던 동물, 코알라들이 늘어나는 사람들을 수용할 아파트단지를 짓느라고 나무를 베어내고 

땅을 갈아 엎어 개발하는 도저의 쳐들어오는 소리에 쫒겨 아파트단지로 오자 사람들은 그들을 쫒아내느라 소동이 벌어지고

그사이에서 동물보호센터에서는 수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 그들의 삶의 변화와 자연생태간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었다.

 

나는 또 아까같은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사람이 살 집을 짓는 것이 어쩔 수없는 우선이고 동물은 사람을 위해 희생되는 것도 어쩔 수없는 일인데 왜들 저렇게…

 

지난번 나는 도무지 여느때 같지않게 심해진 연이은  태풍의 피해와 무더위, 또 곧 닥칠지 모를 엄동설한을 보고 생각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나의 마음과 생각이 잘된 것이 아니란 걸 배우고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

 

급변하는 이상기후, 급격히 빨리 녹고있다는 북극의 얼음, 자꾸만 상처가 깊어만 간다는 대기권 그리고 오존층, 쓰나미, 홍수, 오염된

공기, 사먹어야 되는 물 그마저 돈주어도 사먹기 힘들지 모를 식수,…

 

이 모든 현상들이 사람들의 자연관리에 대한 몰이해, 몰염치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이란 

사람이 정복하거나 파괴하는 대상이 아니고 사람이 정성으로 잘 알맞게 관리하며 더불어 살아가라고 창조주께서 맡겨주신 것이란

사실이다. 동물은 그 자연의 일부이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부이다.

따라서 동물은 사람의 파트너인 것이다.

 

다만 애완동물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집에서 지나치게 사람이상으로 우대하는기이한 현상은 아무래도 기이한 마음을 지워 개운해지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나의 편견이었으면 차라리 좋겠는데..  글쎄.

  

파트너는 동전과 같은 것이다.

동전은 어느 한면만으로는 그구실을 다할 수없는 것이다. 더불어 함께 있어야 하고 함께 살아야한다.

어느쪽으로 불공평하게 치우치 않고 사람의 지혜로 나누어야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신앙공동체도 같은 논리로 삼아야할 것이란 생각이다.

Partnership.

누가 더 잘나거나 못나지 않으며 누가 더 위에 있고 아래로 놓이지도 않는 다만 기능적으로만 그일을 나누되 더불어가지 않으면 

아까의 그 동물들의 예와같이 불편하고 옳지않은 방향으로 걷게될 것이다.

 

 

(유담뽀 )

 

내가 아직 어렸을 적에

우리는 한 때 일본사람이 지어 살던 집에서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온돌방 시설이 없는 일본식 집은 다다미 라는 일종의 돗자리위에서 잠을 잔다.

온돌이 없으니 난로를 설치하여 겨울을 난다.

난방이 있지만 겨울에 때론 새벽에는 발이 시려워온다.   그걸 예방하려고 일본사람들은 함석으로 만든 조그만 물통에다 더운 물을 

담아 이불속 발치에 넣고 자면 아침이 되도록 따뜻한 잠을 잘 수있게된다.

그 물통을 유담뽀라 불렀다.

 

나의 엄마는 겨울이되면 그 물통을 여럿이나 준비하였다가 일일이 더운물로 채워 우리 형제들 이불안에 밀어넣어 주어서 매일 저녁이 아주 따스한 잠자리가 되도록 하였었다.

 

그땐 그것이 당연한 어머니의 일이려니 여겼지만

이제와서 겨울이 저만치 가까이에 오면 나는

그 엄마의 정성이 새삼 마음안에 가까이 다가오며 그 따뜻했던 엄마의 마음이 전해지며

 그러면 나의 가슴도 눈가도 찡하니 감사와 감동에 젖어진다.

 

이미 그런 것들을 다 잘 알고 사용도 하는 교우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혹시 추운 겨울에 발이 시려워 새벽잠을 설쳐본 형제, 자매도 있다면 유담뽀의 아이디어를 시험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 마시고 난 쥬스병, 작은 우유병은 훌륭한 유담뽀 대용이 될 것이다.

너무 뜨거우면 병을 수건으로 감싸면 된다.

 

이 아이디어를 나누고싶어지는 이유는 다만 발을 따뜻하게 하여 추운 겨울을 나는 것만이 아닌 그 따뜻한 물통을 통하여 발도, 몸도 

따뜻하게 되듯이 우리의 마음 또한 따뜻하게 되어 우리의 공동체 삶속에서 서로 따뜻한 하느님의 사랑을 지금보다 더 많이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때문이다.

 

우선 나 부터 그런 마음 실행하기 위해 우유병을 하나 사기위해 장을 보러 일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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