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짜리 동전의 매력




얼마 전에 아파트관리사무실로부터 수표가 배달되어 왔었다.

봉투를 열어 본 나는 눈이 휘둥그레 해지고 말았다.

수표에 찍힌 금액이 단돈 일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보증금에 대한 이자라고 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현금이 아니고서는 일전짜리 수표는 본 일도 들어본 적도 없다.

이것도 분명 돈이니 그냥 버릴 수도 없고…

볼 일 있어 은행에 간 길에 입금하려고 창구 앞에 섰다.

창구직원은 내가 장난하려는줄 알았는지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민망해서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나오고 말았다.

이젠,

어디에서 정확히 계산해야 하는 경우말고는 일전짜린 아무 쓸 데가 없어졌다.

그걸로 무엇 하나 살 것도 없고 구걸하는 이를 도와줄 수 있는 돈도 아니다.

어디 가나 페니가 굴러다녀도 어린 아이들 까지도 쳐다보는 이도 없다.

천덕구러기다.


그 천덕구러기를 길에서 발견하는 날엔 나는 지나치지 않고 꼭 집어서 주머니에 담는 게 버릇이 됐다.

내가 정직한 사람인 척 하려고 주운 페니를 경찰서에 신고하면 장난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이제껏 그렇게 주워 넣은 게 아마도 일불은 족히 넘을 것 같다. 

동전 통을 흔들면 요란하게 소릴 낼 만큼이니까.

내가 열심히 그걸 줍는 건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될 거라는 헛된 욕심때문도 아니고 무슨 딴 꿍꿍이 속이 있어서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천덕구러기가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고 부터였던 것 같다.

왠지 땅에서 굴러다니며 이리저리 밟히는 페니는 날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았다.

옛 노랫말에, ‘만약에 백만원이 생긴다면은…’ 그런 말이 있었다.

어떤 가난한 이가 무엇이 사고 싶어 꾸어 본 꿈속의 큰 돈이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 백만원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 아니다.

바로 페니들이 모여서 이룬 것이다.

제 아무리 돈버는 솜씨가 좋아 한번에 십만원씩 단 열번에 벌었대도 그건 페니를 뛰어넘어 이루어진 것은 아니잖은가. 

백층짜리 계단을 오르려면 반드시 한계단 씩 올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엘레베타로 단번에 백층을 날듯 오르면 그건 다만 빨리 오른 것일 뿐 계단이 없어진 건 아니잖은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런 가장 작은 기본단위를 잊어버리고 또 잃어가며 살고있어 보인다.

특히 아날로그시절을 넘어 디지털시대를 만끽하면서 부터 그랬던 것 같다.

종이위에 붓으로 또는 펜으로 나의 마음을 정성껏 적어 보내던 아름답던 옛모습은 텍스트를 하루종일 두두려대는 디지털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아마도 어른에게서 들어본 기억조차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젠 사랑마저도 인스턴트식으로 디지털방식으로 주고받는 것인지도 알 수는 없다.

최고학부에서 지식을 쌓는다는 대학생들도 길에 오가다 만났을 망정 눈만 맞으면 따질 것도 없이 담박에 대낮에도 함께 할 잠자릴 서슴치 않는다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 이들이 비싼 학비를 내며 드나드는게 대학강의실인지 모른다.

그래서 인성을 잃은 지성은 때론 시한폭탄처럼 위험하고 그래서 무서운 것인지 모른다.

양심을 잃은 성경지식이나 행실을 과연 어떤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현대인들은 순간에서,  찰나에서 기쁨을 얻고 행복마저 찾으려드는  것 같다.

찰나를 기술적으로 풀이한다면 그건 다만 시간 1분을 75분의 일로 나눈 시간이라고 한다.

눈을 한번 깜빡거리는 일도 그 시간에 할 수 없을 짧은 시간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역사의 기록에 남아 아직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그 찰나를 쫓다가 지금쯤 어느곳에서 도저히 멈추거나 끝마칠 수 없을 영겁의 고통에서 그 영혼들은 신음하고 있을까.

백성들을 위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며, 또는 

환호하는 팬들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무대를 오른다던 

정치인들, 연예인들….

씨저,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이성계, 풍신수길, 남북한의 독재자들…

클레오파트라, 마릴린 몬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디트 삐아프, 마리아 칼라스, 잭키 오나시스…

이들 예술인들은 오래 기억될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고 남기면서도 찰나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남성편력과 마약과 성적쾌락에 빠져 영혼도 영원도 함께 잃어갔을지 모른다.

영원은 찰나의 연속일 것이다.

주어진 지금의 순간, 오늘을 진실된 생각돠 마음으로  채워서 성실함으로 샒을 가꾸워가지 않고는 내가 바라는 영원은 결단코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노라니 나는 왜 화살을 맞은듯 가슴이 따갑고 이렇게 두려워지고 떨고 있는 걸까.  

아마도 영화감독 르네 클레망은 그의 작품, 금지된 장난에서 천진한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불성실과 세상부조리를 고발하려 했을 것이다.

나는 지금껏 시간을 들여, 조금은 정성껏 찰나의 기쁨을 지양하고 영겁. 영원을 지향하는 삶에로의 전환을 바라며 그 소망을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또 거리에 나가게되면 길에서 굴러다닐 그 보잘 것 없는, 아무 값어치 없어보이는

그 동전 한닢을 보기만 한다면 어김없이 줍겠다고 다짐하고있는 걸까?

왜 나는 그 찰나의 유혹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penny 17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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