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와 예복
내가 웃기는 얘기 하나할까? "제주도에 갈일이 있어 비서 신부에게 비행기 표를 예약을 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며칠 후 제대로 되었나
확인을 하라고 했는데 그 대답이 걸작인거야. 여행사 직원이 하는 말이 "네 김수환 씨는 예약이 되었는데 추기경 여사는 예약이 안 되었습니다. 추기경여사를 옆자리로 예약해 드릴까요?"
오래전에 추기경님을 모시고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유머가 뛰어나셨던 그분의 자상함과 "바보야"
하며 스스로를 낮추시며 눈웃음을 잃지 않으셨던 그분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마 내 일생에 제일 높으신 분과 식사를 한 것을 꼽으라면 추기경님과 식사가 전부이지 싶습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잔치에 나를 초대한다면 어떨까요? 나라에 한 분 밖에 없는 높으신 분께서 초대한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갈 텐데,…….. 오늘 복음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임금은 종 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 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마태 22,2)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날을 혼인 잔치에 비유합니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25,6) 주님의 날은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히 죽음을 없애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찬송할 것입니다. "보라, 이 분은 우리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25,9)
오늘 복음 역시 주님의 날을 혼인 잔치에 비유합니다. 마태오는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날, 곧 혼인 잔치가 이미 준비되었다고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를 준비하신 뒤 사람들을 초대하셨습니다. 여기서 혼인 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이시고, 그 신부는 하느님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새 계약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임금이신 하느님은 종들을 보내어 초대하십니다. 그들에게 보내어진 종들은 예언자들이고, 초대받은 이들은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로 대표되는 유다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임금의 초대가 전해졌지만 그들은 종들이 전하는 초대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두 번째로 다른 종들을 보내어서 그들을 초대하지만, 이번에도 그들은 임금의 초대에 응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에서 우리는 지난 주일에 들었던 복음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소출을 받아오라고 보냈던 종들, 즉 주님의 날을 선포하던 예언자들, 더 나아가 하느님의 아들마저도 거부하고 죽이던 유다인들의 모습 말입니다. 결국, 임금은 진노를 터뜨리시어 군대를 보내 살인자들을 없애고 고을을 불살라 버립니다. 결국 그들을 위해 마련된 축제와 구원의 날이 진노의 날로 변했습니다.
여기서 짧지만 구원역사와 멸망의 역사가 확실하게 전해집니다. 하느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예언자들을 통해, 또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을 통해 구원의 복음을 알리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66 년에서 70년까지 4여년에 걸친 이스라엘의 1차 독립전쟁에서 로마 군단에게 멸망하도록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살육하고 마침내 70년 8월 20일 예루살렘 시가지와 성전을 불타게 되었고,(7) 마침내 이스라엘은 구원받을 자격을 잃게 되었습니다. (8)
놀랍게도 맨 처음 초대받은 이들의 거부에도 하느님께서는 용기 와 인내를 잃지 않으시고, 새로운 구원을 시작하기로 하십니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그래서 종들은 거리로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
왔다." (9-10) 잔치에 불려온 사람들은 가난하고 버림받고, 자격 없는 사람들이며, 더더욱 착한 사람들뿐 아니라 악한 사람들도 초대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끝이 없으시며 누구도 차별하지 않으시기에 주님 선물의 만찬은 모두를 위해 열려져 있습니다. 가톨릭의 언어로 구원은 보편적입니다. 모두에게 당신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교회는 별의별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사실 이것이 교회의 본모습입니다. 교회 안에는 진짜 그리스도인들도 있고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나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며, 이는 역사의 종말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가라지의 비유처럼 열매 맺는 밀과 가라지는 함께 자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는 거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마지막 장면입니다. 임금은 손님들을 둘러보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 하나를 보고 내쫓아 버립니다. 의인과 죄인 모두 불러 놓고 예복 운운하며 쫓아내는 임금님의 모습은 얼른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이도 우리는 "불린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는 말씀의 숨은 뜻을 압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복의 뜻은 "산상설교의 가르침"을 행하고,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며, 의로움을 행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복을 입고 하늘 잔치에 참석하는 참 그리스도인 입니다.
사실, 우리는 매일같이 주님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미사성제를 통하여 구원의 잔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말씀을 들으며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 지혜를 살며 혼인예복을 지어 갑니다.
추기경님도, 대통령도 아닌, 지존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잔치에 초대 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예복은 잘 지어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