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행진)
전에 내 딸아이가 운전하는 차를 함께 타고 갈 일이 있었는데,
가만히 보자니까 글쎄 이 아이는 신호등 앞에만 섰다 하면 쏜살같이 전화기 같은 걸
끄집어내서 마치 벌이 쏘듯이 한 손가락으로 뭘 찍어대는데 처음엔 무슨 공부라도
그렇게 열심히 하나 싶어서(그럴 아이가 이닌 걸로 알고 있긴 했지만) 그냥 봐주고
지나갔는데 보자 보자 하니까 이건 정말 정신놓고 계속 찍어대는데 당체 난 불안해서
더는 함께 타고갈 수 없으니 아무데나 세워라. 난 걸어가던가 다른 차 불러 가겠다 했더니 아 ! 글쎄 요것이 하는 말이, ” 중요한 일이 있어 그러는데 좀 참아주어야지..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런 뜻으로 신통치도 못한 한국말로 더듬거리고 있었지만
난 속이 끓어오르고 열이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악몽같은 경험을 했었다.
언젠가 한국에 가서 전차를 타고 다닐 때에도 차안에서는 노인네들만 빼고는 모두 전화기를 무릎에 올려놓고 찍어대고들 있었다.
요즈음의 이런 새로운 풍속도. 보기만 해도 어지럽고 불안해지는 문명의 이기들.
자고나면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기계들.
나의 잔소리에 질렸는지 딸아이는 하나 갖고싶으냐고 묻는다.
” Please leave me alone ! ” 타잔같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과학문명의 발달은 물론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과 풍요함을 가져다 준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아니 득보다는 더 많은 폐해와 부작용을 우리는 그냥 지나쳐 보아서는 않될 것 같다.
세상에서 날리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그는 우주는 창조주의 작품이 아니라고 똑똑한 척 하고있다.
부처님 손바닥안에서 놀아나던 손오공도 못되는 그의 혀 한치에 계시는 하느님이
아닌 것만 그가 깨달아도 똑똑하다 말해 주겠는데.
김치나 밑반찬까지 남이 다 만들어 놓은 것 사다가 식구들 밥상에 올려 먹게 된 세상,
계산기나 컴퓨터 없이는 숙제도 간단한 셈도 못하는 아이들.
그래도 모자라서 소파에 누워 리모트로 이것 저것 눌러대는 세상…
우리의 조상님들은 삼시 세끼 정성껏 없는 반찬이라도 직접 만들고 냇가에 빨랫감을 이고 나가서 얼음을 깨고 빨아 와서는 숫불에 하나씩 정성으로 다려서 입히고…
그러고도 때로는 낮잠을 잘 수있는 마음의 여유로움과 풍요로움을 지니고 사셨다.
이제 사람이 만들어 낸 기계를 선용하는 단계를 지나 사람이 슬금 슬금 그 기계에 예속화 돼 가고 곧 사람이 그 기계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자못 심각해져서 따져보아야만 하지 않을지…
( 나는 자캐오 이고 싶다 )
우리가 복음서에서 배웠듯이 자캐오는 아마도 키도 작달막하고 볼품도 없는 외모에
게다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세금을 악착같이 거두어 들이며 자기 백성들을 괴롭히며 살아가는 까닭에 동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거둔 세금을 중간에 따돌려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살면서도 한편으론 늘 어딘가 허전하고 불안하고 외로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니 누군가로부터 위로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항상 그를 감싸고 있었을 것이란 짐작을 쉽게 해 볼 수 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는 곳이면 아마도 언제나 달려가 안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군중들의 뒤에 밀려나면 작달막한 주제에 예수님의 모습을 뵐 기회가 만만치 못했을 것이다.
드디어 머리를 짜서 꾀를 내게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지나가실 길목의 무화과 나무위에 올라가 기다리고 있었지 않은가?
지나시는 주님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꼭 반드시 뵙고야 말겠다는 그의 열망은 예수님께 전달되었었나 보다.
” 자캐오야, 이리 내려오너라. 오늘 너의 집에 함께 가서 묵어야겠다. “
상상만 해도 그는 가슴이 터질 것같은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먹었을 것이다.
아 ! 나는 오늘 자캐오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진 것 부족하고, 볼 것도 없고 뭣이고 뒤 떨어지고 꼴찌인 것만 같은 나.
나도 무화과 나무에 올라 주님을 만나고 싶다.
나의 가장 약한 점, 그것을 걸림돌로 삼아 그것의 노예가 되고 패배주의자가 되느니 오히려 그 나약함을 딛고 디딤돌로 삼아 그 약점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다면 나는 성령의 도움으로 어쩌면 위대한 힘마저 이루어 승리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에 가면 무화과 나무가 있을까?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길목을 어떻게 그 정보를 미리 얻어낼 수 있을까?
정보를 얻으려고 인터넷의 신세를 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화과 나무를 찾으러 온 동네를 헤메며 다닐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모든 게 내 마음안에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캐오처럼 주님께 가까이 다가 가겠다는 마음의 열망만 있으면 나의 주님은 바로 나의 곁에 언제나 내가 원할 때면 거기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무화과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큰소리 치고 싶다.
” 가장 보잘 것 없고 외롭고, 춥고 배고프고 왕따 당하고 슬프고 힘들고 지친
모든 형제님들, 자매님들. 모두 함께 모여 와 무화과 나무에 올라 우리의 좋으신
주님을 맞이하십시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