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가가 되는 길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 말 한마디로 베드로는 내 교회(예수님의 교회)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 라 하늘나라의 열쇠와 매고 푸는 권한까지 받습니다.
그런 지난주일의 복음과는 대조적으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베 드로를 무섭게 꾸짖으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정체를 밝혀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지만 어떤 의미의 그리스도이신지 마태오복음은 밝혀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세 번의 수난과 부활에 관한 예고를 전하면서 그리스도는 고통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밝힙니다.
‘그때부터’(21)로 시작하는 오늘의 복음은 새로운 전환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이 당신이 누구신지를 알게 된 그 때부터 당신이 겪어야 할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 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 기 시작하셨다.”(21)
‘고난 받는다.’는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먼저 받아들이셨고 지금 제자들에게 드러내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앞으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가 될 것입니다. ‘사흗날에 되살아나신다.’는 말은 초대교회의 신앙입니다. (1코린 15,4 참조)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죽음으로 끝나버리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되는 것이기에 베드로는 고난과 죽음을 거쳐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강하게 반발합니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22) 승리의 월계관을 기대했던 베드로한테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환상에 사로잡힌 그의 이런 태도는 내 교회를 세우는 초석이아니라 예수님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3) 베드로는 자기 신앙을 고백할 줄은 알았으나 아직 하느님 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인간적 생각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를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의역해 놓았습니다. 영어로는 "Get behind me, Satan!" 입니다. 사탄은 마귀의 우두머리입니다. 마귀는 늘 예수님 앞에서 그분을 가로 막습니다. 앞에 선다는 표현은 늘 자기가 뜻하는대로 하려는 우두머리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짜 지도자들이 앞에서 잘못 이끌면 모두가 멸망에 이르듯 신앙 안에서 앞에 서시는 분은 예수님이셔야 합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1. 자신을 버리고 2. 제 십자가를 지고 3. 나를 따라야 한다.”(24) 그분을 따라야지 우리가 그분을 앞 설수 없습니다. 고통은 신앙을 망설이게 하는 유혹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혹에 빠진다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고통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고통을 피하게 해주는 요술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신앙 안에서 잃거나 잊으면 신앙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신앙인들이 고통을 즐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 앞에 주어진 고통 앞에서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으며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입니다. 사실 고통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고통의 원인은 내 것만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것, 내 가정, 내 나라의 이익을 위해 정의라는 가면뒤에 있는 고통들이 필요악이라는 말 로 포장 되어진다면 그 고통은 누구의 몫이 됩니까?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버리는 것' 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버 리는 것입니다. 앞서 베드로가 섣불리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거부했던 이유와 비슷합니다. 항상 잘되고 행복하려고 하느님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늘 자기밖에 모르고 하느님까지 자신을 위해 끌어내리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가정 안에서 늘 자기를 앞세우면 남들이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게 되면 세상 속에서는 고통과 수난의 길을 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 이유로 하느님의 뜻을 저 버리고 인간의 욕심을 쫓아간다해도 만족에 이르지 못합니다. 인간의 눈에는 당장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행위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 됩니다. 신앙인이 가야 하는 길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매순간, 하느님이냐 세속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되는 것이 우리이므로 주님은 먼저 자신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버릴 때 비로소 자기 십자가가 보입니다. 자기 부정의 신 비안에서 내 십자가가 보일 때 ‘제 십자가'를 질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금욕적이라기보다 신비적인 말씀입니다. 단순하게 그저 아픔과 고통이 십자가가 아닙니다. 불의에 의한 고통도 내 십자가라고 생각한다면 신앙은 그저 혼란 속에 자리 한 불의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 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25) 예수님 생애 말기쯤에는 종교계 지도자들 사이에서 예수님을 처단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답변이십니다. 이 말씀을 이렇게 읽으면 어떻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존재의 중심으로 여기는 사람은 이미 자신을 잃은 것이고,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실패한 인생인 듯 보이나 오히려 그것이 자기를 지키는 길입니다.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는 정작 고난을 당하고 죽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올바른 고백을 한 베드로가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 예수님께 혼쭐이 나는 모습은 하느님을 섬긴다면서 변덕스레 내 만족만을 채우려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변할 수없는 것은 신앙은 양다리 걸치기가 아니고 주님을 따르려는 결단이라는 사실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