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학교 옆에 Lake Michigan이 있었습니다. 시카고에 사는 사람이면 호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압니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서 걷다가 늘 같은 벤치에 앉아 쉬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어제 본 저 호수와 지금 보는 호수는 같은 호수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Lake Michigan이라 부르지만, 물은 흘러가므로 같은 물은 아니기에 매일 새로운 호수를 만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은 사랑하라 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킬 것이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는 말씀 또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 안에는 예수님께서 찾아오시기에 그분이 하신 일들을 볼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어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 안에 성령께서 일하셔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살아 계시게 하고, 그들이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해주시며 실천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어서 “아버지께서 보내 주실 성령은…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합니다. 초기신앙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회상하고 그것을 배우고 실천하며 하는 말입니다. 신앙인들 안에 일어난 변화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초기신앙공동체는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새로움이 시작하는 곳에서 성령을 봅니다.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것도 성령이 하신 일이었고,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도 영의 인도를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발족한 것도 성령강림과 더불어 된 일로 초기그리스도공동체는 말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고, 그 시대 유대교가 외면하던 병자들을 고쳐주어 그들의 삶의 터전으로 되돌려 놓으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병고는 죄에 대한 대가로 하느님이 주셨다고 믿던 유대교사회였고, 유대교는 반신불수와 나병환자를 포함한 모든 장애인은 그들의 죄 값을 치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런 환자나 장애인들은 스스로 죄인이라고 절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이들을 예수님은 고쳐주시면서, 하느님은 인간을 단죄하는 분이 아니시고 벌주는 분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지어 하느님께 벌을 받아 가난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도 행복해야 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런 새로운 가르침과 새로운 일들은 놀랄 만치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인류 안에 시작한 것이고, 초기 신앙인들은 그 새로움을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여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다고 깨달은 제자들은 그분이 보여주신 새로움을 실천합니다. 그들은 그 새로움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믿게 되었고, 율법과 제도로 경직된 유대교를 떠나 자비하신 하느님이 살아계신, 유연한 성령의 공동체, 즉 그리스도교를 출발 시켰습니다. 법과 제도는 그 시대에 필요하여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시대가 달라지면, 예수님의 말씀도 새롭게 이해되고 성령이 하시는 일도 새로워집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넘어 부활의 미래를 예수님에게 주셨고, 하느님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역사 안에 우리를 새롭게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하셨던 일들이 하느님 안에서 새로웠음으로 알아듣게 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깨닫게 하고, 그것을 시대에 따라 새롭게 표현하고, 새롭게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은 과거의 법과 제도를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만든 것이고, 인간은 역사 안에 살아가는 것이기에 인간이 만든 법과 제도가 영원하다고 믿으면 하느님께서 주시는 부활의 미래를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인간이 만든 것을 절대화하는 곳에 우상이 생기고 그 우상에 의해 사람은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숨결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사람을 살리십니다. 진흙으로 빗은 죽음에 하느님의 숨을 불어넣어 생명이 된

것처럼 하느님의 숨결인 영께서는 새롭게 변해가는 사람 안에서 살아계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안에서 아직도 어제를 보고 과거의 아픔만을 보며 새로움을 보지 못한다면 미시간 호수는 없다고 우기는 것과 무에 다를까 싶습니다.

 

주님께서 내리시는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기도 안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그 체험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체험 하게 되기에 우리의 믿음을 키우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갈라디아 5,22) 입니다. 즉 사랑은 기쁨을 가져다주며, 그 기쁨은 평화를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산다함은 무슨 뜻일까요? 평화의 글씨를 보면 平和입니다. 보는 바와 같이 평화는 벼 (禾) 먹는 입(口)이 공평(平)하도록 나누는 것입니다. 나눔은 또 다른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눔을 통해 평화를 찾고 평화 안에서 기쁨을 살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김 두진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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