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봉헌 축일에……..
연중 4주일을 지내는 오늘이지만 내일이 주님 봉헌 축일이기에 봉헌 축일을 맞이해서 우리의 봉헌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렇게 글을 나눕니다.
오늘 루가 복음에서 나오는 말씀은 정결법과 속량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법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도록
하지요. 정결법이란, 이스라엘의 율법에서는 남아를 낳은 산모는 40일간 여아를 낳은 산모는 80일간 불결한 것으로 여겼답니다.
따라서 남아를 낳은 산모는 40일 이후에 여아를 낳은 산모는 80일 이후 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일년생 어린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제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다시 정결하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요셉과 마리아는
제물로 비둘기 한 쌍만 바쳤다고 하는데 바로 가난한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되었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가난한 분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죠.
재미있는 사실은 출산으로 인해 남편이 부정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요셉은 정결레를 치를 필요가 없었는데도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정결례를 치렀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이는 복음의 저자가 사무엘의 부모 엘카나와 한나가 함께 성전에
가서 어린 사무엘을 바쳤다는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또 속량법이란 이스라엘에서는 외아들이든 장남이든 아들을 처음 으로 얻으면 하느님의 차지로 간주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차지인 첫아들을 부모가 사서 기른다는 뜻으로 부모는 첫아들을 나면 한 달에 한번 성전 비용으로 5 세겔 (20 데나리온)을 바쳤
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느님께 바친 첫아들을 매달 5 세겔을 내면서 도로 찾는 것이죠. 이렇게 첫아들을 봉헌하는 이유는 출애
굽기에 나와 있는 말씀에 연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빠져 나올 때 파라오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 모세의 말을
안듣자,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의 맏배들을 모조리 치심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종살이를 벗어난 것을 기념하면서 감사
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의 첫 아들을 봉헌하도록 율법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봉헌은 단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짐승들도 그렇게 해야 했는데, 물론 남자와 수컷의 경우에만 그러했습니다.
(여성 여러분들 이런 설명에 분개하지 마세요. 아주 오래된 이스라엘의 법입니다.)
현대의 교회는 봉헌축일에 초를 성대하게 축성합니다. 교회에서 일 년 동안 쓸 초를 축성하고 또 교회에 초를 봉헌하기도 하는
날 입니다. 많은 분들이 가정에서 기도하실 때 쓰는 초도 이날 봉헌하여 축성을 받습니다. 초를 축성하는 것은 빛으로 오신
그분의 빛을 교회에 또 세상에 비추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또한 주님 봉헌 축일에 한국의 많은 수도회에서는 서원식을 갖습니다. 예수님을 봉헌한 의미를 수도자들도 따르기 위함이며
예수님이 하느님께 봉헌되어진 날 그분들도 함께 봉헌 되어 짐은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저는 수도자의 신분으로 봉헌축일을 앞두고, 그 의미를 생각 하며 지내려고 지난 며칠간 노력했습니다. 교회에서는 수도자들의
삶을 봉헌된 삶이라 합니다. 분명 봉헌되어진 것은 사람 이든 물건이든 이미 봉헌한 사람의 손을 떠났으니, 봉헌 받으신 분의
것인데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많음에 죄송한 마음이 컸습니다. 서원한지가 얼추 30여년이 다 되가는데도 살아온
시간만큼 삶이 주님의 향기를 내는 깊음을 가지고 있지 못한 걱정과 근심이 컸던 지난 며칠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저보다 더
잘 아시는 그 분께서 저의 봉헌을 받아 주셨으니 그분의 깊은 뜻이 내 안에 숨어 있고 그분의 현존 때문에라도 오늘을 기쁘게
살려 노력했다면 너무 약삭빠른 처사일까요?
오래 전에 중국에서 선교하시던 김 바오로 수사님에게로 주님의 봉헌 축일을 기해 메일 한 통을 보내신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같은 수도회의 형이 되시는 분이고 늘 제게 힘이 되어 주시며 조용히 또 겸손하게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분의
메일을 간직했었습니다. 오늘 수사님의 글을 염치도 없고, 또 양해없이 여기에 옮겨 싣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하늘을 우러러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이다. 하늘이 맑으니 산뜻해야 함에도 공연한 불안감은 지나온 내
발자취에 흠이 많은데서 오는 불편함일거다. 그래서 밤이 내게는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에는 별도, 달도, 쏟아지는 유성도
많기에 약간 혼잡스럽긴해도 어둠과 친해지기도 쉽고 어둠속에선 할 말도 많게 되는가보다. 주님 앞에 봉헌된지 어언 25년.
(지금 얼추 35주년쯤 되었을 겁니다.) 그 긴세월 몇 번이나 주님과의 약속을 떠올리고 살았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그럼에도 아직 수도자로 존재해 있음은 그분의 은총일 수 밖에 없다. 이 은총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동의 것이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 악용된 경우가 많기에 그분께 죄송한 마음이 더 크다. 허원의 가치를 느끼기 전 생각도 못하고 그저 세월만 삼켰다.
사람들이 존중하는 만큼 스스로도 존중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살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삶들이 티 없는 하늘 앞에 더 없이
부끄러운 봉헌 축일이다. 빛은 되지 못해도 그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깨끗한 거울이라도 되어 사람들에게 올바른 각도로 빛을
반사할 수 있는 삶이 나의 남은 삶이 되도록 봉헌의 날 주님께 기도 드린다.
죄송스러운 마음에 무거워진
주님 봉헌축일에
작은 바오로 김용권 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