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에 이르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당대의 세리란 유다인 사회에서는 배척을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세리들은 백성들로 부터 세금을 걷어 로마제국에 바쳐야 했는데, 당시에는 정확한 세금법이 없어 세리가 임의로 걷어 적당한 몫은 제국으로 나머지는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은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욕먹고 사는 직업인지라 믿을 것은 돈과 권력 밖에 없다고 생각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욕먹고 사는 인생의 보상이라 생각 했겠지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권력있고 힘 있는 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도망 다니니 결국 가난한 유다인들에게 두 배 혹은 세배의 세 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제국의 앞잡이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세리들은 결국 유다인 사회에서 지독한 왕따를 당하며 살게 됩니다. 하물며 세리들의 우두머리 세관장이었던 자캐오야 오죽 했겠습니까?

 

에리코는 예루살렘으로부터 27km정도 떨어진 도시입니다. 거기엔 유다와 베레아 지방의 교역을 관리하는 세관이 있었는데 그곳의 책임자가 바로 자캐오였습니다. 이런 자캐오를 복음에서는 부자라고 합니다. 자캐오란 이름의 뜻은 '깨끗한', '순수한,'이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말  '자카이'를 그리스말로 발음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의 뜻과는 달리 깨끗하게 모은 재산이 아니었음을 오늘 복음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캐오가 예수님을 뵈려합니다. 자캐오는 동료들로부터 예수님에 관하여 많은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분은 유대교의 지도자나 율법 학자와는 달리,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시고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자기와 같은 세리도 제자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물론 다 믿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사실이기를 바라며 예수님을 한 번 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예수님이 예리코에 오셨습니다. 벌써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었고, 그분을 둘러싸고 있어 자캐오는 그분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키 작은 자캐오' 라는 표현은 돈이 많은 부자임에도 사람들로 부터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군중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해도 사람들은 길을 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화를 내고 있으니 또 한 번 가슴이 시려옵니다. 그런데 앞에 돌 무화과나무가 보였습니다. 세관장이고, 부자인 그는 체면도 부끄러움도 뒤로 한 채 군중들과 예수님을 '앞질러 달려가'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저 그분을 볼 수 있다면'하는 하나의 열망으로……

 

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 자캐오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나치는 그분을 보려 했습니다. 나무에 숨어 그분을 보려는데, 그분이 먼저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아니 이럴 수가? 그저 보고만 싶었는데, 죄인이라 말씀도 못 건네고, 바라만 봐도 되겠다 싶어 그분을 바라보려고만 했는데, 그분이 내 이름을 부르시며 내 집에 머무르시겠다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그분이 어찌 내 이름을 아셨을까? 그분이 나 같은 왕따에게 오셔서 머무르신다면 그분도 욕을 먹을 텐데……. 만 가지 생각이 겹쳐왔지만, 따뜻한 눈길과 음성으로 부르시는 그분의 목소리에 그저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다”(6절). 예수님의 초대에 자캐오는 적극 응답합니다. 자기를 숨겨주었던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과 군중 앞에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 와중 에도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7절) 하며 군중들의 투덜거리는 소리도 듣습니다. 죄인의 집은 부정을 탄다고 누구도 세리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전통인데 (신명 21,20-21) 당신이 우리 집에 묵으신다니요?

 

감격한 자캐오는 말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 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8) 얼마나 가슴이 뛰었으면, 얼마나 감격스러웠으면 그 구박을 참아내며 모아두었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을까요? 이로써 그는 직업에서 오는 중압감에서 해방됩니다. 늘 자신을 괴롭혀 왔던 남들의 따가운 시선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런데 또 키가 작았던 자캐오에게 청천벼락 같은 소리가 또 한 번 들립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9) 신체적 장애나 약점이 조상들의 죄라고 생각하던 유다인들이지만, 개의치 않으시는 예수님의 선언에 자캐오는 또 한 번 놀랍니다. 제가요? 제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요? 늘 구박 받고 왕따인 제가 아브라함의 자 손이라고요?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하느님의 백성이라고요? 당신이 저 같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구요? 당신은 저의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나저나 제가 당신을 모실 자격은 되나요?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10) 예수님은 당신의 소명, 곧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음’을 밝히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착한 목자를 말합니다.

‘잃은 이들’이란 ‘잃은 양’(15,4)을 뜻하는 것으로, 자캐오는 목자를 찾아 헤매는 잃은 양이었습니다.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에서 우리는 무엇을 봅니까? 군중들의 투덜거림입니까? 아니면 길 잃은 우리의 모습입니까? 자캐오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총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의 죄를 볼 수 있었고 용기를 내어 그것을 고백할 수 있었으며, 이제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 증명하고자 합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하느님과 인격적 관계를 회복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자캐오에게 선택된 백성의 축복을 전해주셨습니다. 자캐오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갈라 3,7 참조).

 

자캐오는 예수님을 뵈려 그분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마지막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잃은 이들을 찾으러 오셨다 하십니다. 즉 자캐오는 목자이신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은 잃은 양이었던 자캐오를 찾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 분께서 자캐오를 찾으신 것처럼 지금 우리게 오십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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