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자유롭게 하리라

이 즈음에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특히 한국에서는 각 분야에서 널리 그 존재가 알려져 있는 소위 지명인사들의 비명횡사 소식들이 큰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주고 있었다.
큰 기업의 책임자들이 , 높은 공직자들도 또 연예계의 젊은 별들이 각계의 지도층이라 해야 마땅할 이들이   무슨 연유로 목숨들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살하였다는 참담한 소식들은   오히려 이 글을 쓰고있는 나 같은 무명의 사람을 비탄속으로 해괴망측한 혼란스런 마음으로 몰아 넣는다.

그 반면에 어떤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마음을 무고한 다른 이웃들에게  발산하여 그 이웃들을 죽이고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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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파괴하던, 남을 해치던간에 생명의 소유권자도 아닌 이들이 사람의 생명을 살상하는 궁극적으로 무책임한 행위는 그 원인이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실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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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개의 사유는 각각이고 나름대로의 이유와 구실이 있을 것이지만  공통적인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해 보건데 아마도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날 원하지도 않았고  자신에게만큼은 그런 일이 결코 없기를 그렇게도 바랐던 불행이 홀연히 찾아들어 덮쳤다.
그 이는 말할 것이다.
“아! 나에게 어째서 이런 불행이 닥친단 말인가? 왜 그 많은 사람 다 놔두고 하필이면 나야?  Oh my God ! Why me? “

” 난 결단코 이런 불행을 원치도 않고 또 감당할 준비도 안 되어 있어.
  내가 이 불행한 변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나의 눈을 감아버리거나 그도 아니라면 내가 이렇게 곤란에 빠져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듯 태연하게 여전히 먹고 마시며 웃고있는 저 이웃들을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 뿐이야.
나는 결단코 저들을 용서할 수는 없을 거야. 저들을 파괴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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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떤 예기치 못했던 불행이나 변화를 만났을때  아무렴 힘들고 어렵더라도 슬기럽게  그것을 슬기롭게 반드시 이겨내야겠다는 용기와 의지를  전능의 힘에게 의탁하며  찾고자하는 마음을 못 갖춘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쉽게 파괴와 파멸의 길로빠져들 가능성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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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예를 구약시대의 욥에게서 찾아보자.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욥이란 사람만큼 큰 불행을 한 생애에서 만난 이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는 가진 모든 것을 잃었고 몸은 만신창이가 된데다가 친구로부터도 또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받고 조롱거리가 되었었다.
그는 절규하였다.
“희망이 어디있으며 기쁨이 어디 있겠는가?”
하느님마저 자신의 처지를 외면 하시는듯 하였다. 그래서 그는,
” 그런데 하느님은 앞으로 가 보아도 계시지않고 뒤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구나.”
절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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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고하고 욥이 끝까지 그 끈을 놓지 않고 붙잡은 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었고 그 하느님에게서 오는 희망이었다.
”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이도 하느님이고 그러니 또 이렇게 어려움과 불행을 허락하시는 이도 나의 주님이다.” 언제나 좋은 일만, 언제나 햇볓이 쨍쨍 나를 비출 수는 없다는 걸 욥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나를 삼키려 할지라도 나는 주님께 의지하는 신뢰와 그 희망의 끈은 놓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 나의 살이 뭉그러져 이 살이 즐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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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런 믿음과 희망은 도저히 불행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그에게 하느님의 큰 축복을 가져다 주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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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른 곳은 논외로 하고 우리 공동체만을 생각하더라도 아마 많은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알게 또 모르게 어려움에 처해 있으리라는 것을 밖의 세상 돌아가는 것으로 가늠하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움은 제일 먼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찾아올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것만도 아닐 것이다. 참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야할지 너무나 막연하고 꽉 막혀 보일 것이다.

그럴 때에 욥을 생각하자. 그래서 위안을 얻도록 하자.

하늘이 무너져도 솟을 구멍이 있다고 우리의 조상들이 일러주었다.
쥐구멍에도 볓이 들 날이 있다고도 하였다.

“시련을 이겨내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야고보서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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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이 닥쳤을 때 가장 조심해야하고 또 반드시 찾아드는 것은 (유혹)입니다.
내가 가장 약해졌을 때 악은 유혹의 손을 구원의 손처럼 내밀어 줍니다.

아주 너무도 힘들었을 때, 실제로 체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단 돈 한푼이 있었으면 살 것 같은 때였습니다.
꼭 실제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생생한 소리가 저의 귀를 유혹하였습니다.
” 이렇게 다급한데 무엇을 가릴 경황이 있는가?
  지금 한가하게 무슨 체면 따지고 있는가? 어서 일어나 나가 마약이라도 팔아서
  우선 다급한 불을 끄곱하야되는 거 아닌가?”

자칫하면 넘어가고야 말 유혹이었습니다. 물리치길 참 잘했습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것 또 하나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고 돌아보는 일일 것입니다. ” 아니 내 코가 석자이고 당장 내가 죽을 지경인데 남 생각하라니?”
어쩌면 바로 그 때가 이웃을 생각할 가장 좋은 때일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어려운 사람같지만 돌아보면 그래도 나보다 더 어려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알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하신 뜻을 새겨 봅니다.
내가 처한 환경에 일희일비하며 흔들리지 말고 그로부터 초연해질 수 있다면 하느님께 의탁하고 나를 속박하고 있는 굴레에서 벗어난다면 나는 자유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분이 바로 진리 자체이니까요.  

또 다른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교우들이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좋은 세월 만났으면 하고 정말 진심으로 희망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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