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해야 할 볼일들.
그런 일거리들이란 으레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해 주기 마련이다.
점심시간마저 한참이나 놓쳐서 잔뜩 허기진 배를 안고 집으로 서둘러 돌아오는데
길목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다가 앞에서 포스탸에 걸린채 날 바라보는 채플린과 눈이 마주쳤다.
오랫만에 보게된 챨리의 사진이 피곤했던 나의 기분을 잠시 신선한 기분으로
바꾸어 주었다.
챨리 채플린 –
그는 누구인가?
너무나 어려서부터 불우한 가정환경에 여덟 살도 안된 나이에 늘 배가 고프고 허기져서 홈레스 센터의 신세를 지고 이리 저리 고아같이 자라고 있었다.
엄마는 거리의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벌이를 하다 병으로 목소리를 잃는 바람에 직업을 잃게되었지만 그런 엄마에게서 연예인 기질을 물려받았던 것일까?
여덟살 배기가 유랑극단을 찾아가 취직한 일을 보면 그렇다.
그랬던 그이긴 하지만 재능을 인정받기 까지는 온갖 허드렛 일이나 해 가며 겨우 연명하며 자랐다. 그렇게 해서 그 유명한 희극배우는 탄생하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눈물젖은 빵, 그 속에서 이웃을 즐겁게 해줄 꿈을 키워 낸 셈이다.
” 세상은 나에게 최상의 것도 최악의 것도 함께 선사해 주었다.
나는 행운과 불운이 떠다니는 구름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란 믿음을 갖게되었다. 그런 믿음때문에 나는 아무리 나쁜일이 나에게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좋은 일이 생기면 놀라기도 했지만 기쁘기도 했다. “
여러 차레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불운한 삶을 이어갔지만 화면에서 그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노력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의 희극의 특징이라면 좀 모자라고 덜된 모습으로 말하자면 망가진 어릿광대의 모습이 되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뭣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잘난체 하면 사람들은 아니꺼워 하고 메스껍다 하지만 내가 넘어지고 실수하고 망가져서 못난이가 되면 그걸 보고 남들은 즐거워 하는 걸까? !
당구장에 가 보면 큐에 맞은 공은 아래로 나동구라 져서 떨어져 주어야만 그 큐의 주인은 게임을 이기게 되고 기뻐한다.
세상의 이치이겠지.
어쨋거나 그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삶의 활력소를 찾고 찌든 삶의 피곤을 덜어내어 거기에서 희망을 얻는다면 그 자신은 망가지는 것쯤 상관하지 않았던 당대의 희극인이었을 것이다.
챨리 채플린
만일 챨리가 그대에게 웃음을 선사하거든
그것은
그가 슬픈 가슴을 쥐어 짜 낸 찌꺼기라 여겨주세요
만일 채플린이 많은 이를 즐겁게 해 주거든
그 어릿광대가 슬픔의 강물을 건넜다 여겨주세요
만일 그대가 선사받은 웃음 삯을 치르려거든
동전 한 닢 보다는
차라리 그의 가슴을 어루어 주시구려
만일 광대의 어릿광이 그대를 즐겁게 해 주었거든
그의 슬픈 가슴에서 강물이나 한 됫박 덜어내 주시구려
(Are you normal ?)
지난 날 어떤 이를 청문회에 불러놓고 삿대질로 온갖 비리를 추궁하고 호통치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이 관직에 오르게되어 거꾸로 남들에게서 추궁을 받고있다.
위장전입에 불법헌금을 추궁하자 그는 그까짓 거야 잠깐의 실수인데 뭘 그러느냐고 능청이다. 그가 되묻는다.
” Are you normal then ?”
까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던 데이빗은 가슴에 통증이 와서 찾아간 의사에게서 암이 발견됐다는 날벼락같은 선고를 받게된다.
이제 삼십도 안된 젊은 나이에 충격이지만 가족에게는 걱정거리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혼자 고민하다가 이제 남은 생이 얼마 남지않았다고 여겨지는 시점에서야
사정을 털어 놓는다.
물론 놀란 가족들은 아니 그런 중대한 일을 왜 여짓것 말을 안했느냐고 추궁한다.
남에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으려는 배려였다는 설명에, ” 우리가 남이가? “
” Are you normal ?
누가 더 정상적이고 누가 비정상적인가 하는 것도 어쩌면 다 어떤 입장에 서서 바라보는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옷을 뒤집으면 거죽이 안이 되고 안이 거죽이 된다.
물론 잘못은 반드시 바로잡고 또 고쳐져야 하겠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나의 들보보다는 남의 티끌을 찾아내는 일에 더 익숙해져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또 부인이나 남편이 실수나 잘못을 하면,
” 야유, 또. 그럴줄 알았어. 지까짓 게 그렇지 뭔들 제대로 할려구?”
이렇게 하기가 쉬울지 모른다.
그러면 난 아무리 해 봤자 인정을 못받는다는 열등의식에 살게되고 안할 실수도 더 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주 습관적이고 고의적인 나쁜 버릇이 아니라면 격려해 주자.
잘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도와주자.
“Yes. You can. You could be better next time. “
태양을 바라는 지구는 한 시간마다 15 도씩 돈다고 한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밝을 때에 저 반대편에서는 어둠속에 있게되는 창조주의
기막힌 섭리이고 가르침이다.
지금 무더위에 땀 흘리지만 그것은 이제 곧 내가 추위에 움추리게 된다는 예고를 해주고 있는 신호이다.
땅거미가 질때 먼동이 터 올 그때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라톤에 출전했던 사람이 그러는데 곧 쓰러질 것만 같던 마음이 앞에 골문의 싸인을 보게되면 새로운 힘이 올라오며 힘차게 골인하게 되더라고 한다.
내가 기쁠 때 슬퍼하는 이를 위로하자.
절망스러울 그때가 희망을 찾을 가장 좋은 바로 그때일 것이다.
우리 모두 서로 격려하며 함께 희망을 갖자.
그 희망은 바로 하느님이다.
하느님의 명령대로 사는 삶이 곧 희망이다.
‘ YES, WE CAN . “
( 지금까지 잘 하자고 한 일들이 실은 내 자신이 가장 잘 안되서 힘든 일들이다.
잘 하지 못하니까 자꾸만 잘 하자고 말한다.
자기가 잘 하고 있으면 왜 그렇게 잘 하자고 말 할까? 묵묵히 잘하면 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