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집에 도로 꽂아라 “



베드로라고 여겨지는 예수님의 한 제자가 또 다른 제자였던 유다가 몰고 온 다른 무리들이 주님을 붙잡으려 하자,

칼을 빼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라버렸었습니다. (마태26:51)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게, ” 칼을 잡는 자는 칼로 망하는 법이니, ” 칼을 칼집에 도로 꽂으라고 당부하셨지요.

그런데, 그 어느 때 보다도 사람의 생명을 마구 죽이고 생명을 허술히 여기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그 주님의 가르침에 혼동을 자주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가르침에 의거하면 예수께선 분명히 폭력을 옳지 못한 일로 삼으셨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폭력을 바라보는 우리는 폭력을 두가지 다른 관점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에대해 명확한 이해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그래서 혼란스러워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폭력을 (의로운 폭력) 과 (불법적이고 불의한 폭력)으로 구분하여 보고 그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간에 또 두 다른 민족간에 다툼이 있어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편의 사람을 죽이면 

반드시 한쪽은 그를 살인자, 테로리스트라고 칭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반대 편에선 어떻습니까.

그를 의로운 이로 칭하며 심지어는 순교자라고 하지 않는가요?

그러면,

그들 두 이해당사자가 아닌 제 삼자의 입장에서라면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느 판단이 옳다고 해야 할까요?

가장 우리에게 가까운 예를 들어 보자면,

안중근, 토마스가 만주의 하르빈역에서 이또오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물론 일본은 즉각 그를 체포하였고 약식재판을 거쳐 그를 사형에 처했었습니다.

폭도로 간주하였기 때문이지요.

우리에겐 그가 민족을 괴롭히는 원흉을 제거하였으므로 민족의 영웅이고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예가 아니고도 지금 자주 벌어지고 있는 중동지역의 이스라엘과 아랍민족간에는 언제나 긴장이 감돌고

기회만 닿으면 폭력으로 살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곳에서도 한 쪽은 의거이고 또 다른 쪽에서는 테로리스트를 주장하며 그걸 되풀이 하고 있지요.

그리고 먼 옛날로 거슬러 가면 모세가 자기 민족 사람을 괴롭히는 이집트사람을 죽였습니다.

따지잔다면,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체포하려는데 그를 따르는 제자가 칼로 그 일을 제지하려는 일 보다 더 의로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고하고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배워 알고 있는 성경이 모세를 폭도나 테로리스트로 말하고 있는가요?

민족의 고통을 대신해서 자신의 목숨을 마다않고 제거한 안중근의사를 폭도로 보아야 할까요?

참으로 혼동되고 혼란스러울 이슈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고귀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서 그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끔찍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판단은 저의 몫이 아니고 하느님께 맡기고 저는 다만 생명을 존종하고 사랑해야 하는 저의 의무를 다짐해 봅니다.

분명한 일은 

저희의 교회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불의한 일로 규정하고 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낙태라는 이름으로, 또 사형제도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또 다른 많은 인간생명을 훼손하며 죽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남의 일로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차가운 눈이되어 바라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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