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엄마에게 물었어요
엄마, 제가 크면 뭐가 될 것 같아요?
예뻐질까, 돈 많이 벌게 될까요?
엄마는 이렇게 말해 주었었지요
Que Sera sera(Whatever will be, will be)
네가 무엇이 되건간에, 난 몰라
장래 일을 우리는 알 수가 없단다
케 쎄라 쎄라 “
지금은 아마도 이 세상을 떠났을 Doris Day가 그의 독특한 목소리로 불러서
유명해졌던 노랫말입니다.
이 노래는 그 2절과 3절 그리고 4절에서,
계속 묻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그림을 그리게 될까요, 노랠 부르게 될까요?” 묻고
자라서 애인이 생겼을 때
“우리의 앞날에 무엇이 있을까요? 언제나 아름답기만한 무지개가,
아니면 때론 먹구름도 만날까요? “
그 이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이 생겨나자 그 아이들이 또 그렇게 물었어요.
” 엄마, 우린 자라면 무엇이 될런지요? “
그 때도 난 이렇게 도리스 데이의 노랫말을 중얼거릴 뿐이였지요.
” 그건 너희들도 모르고 엄마도 모르고 장래 일은 아무도 몰라요. 케 쎄라 쎄라. “
* * *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땐 다소 불만스럽고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아니 자기가 자신의 앞날을 저렇게 확신도 못가지고 어떻게 불안헤서 산단 말인가?
엄마는 또 뭐야?
제 딸에게 너의 장래는 희망차단다, 용기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라. 그렇게 말해 줘야
되는 거 아냐? 어째 딸아이를 그렇게 맥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거야?
내 엄마 맞어?
그런데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잠시 후의 일을 알 수 있습니까?
내일 아침에도 태양은 어김없이 또 오를 것이다. 어젯밤에도 친구들과 진탕 마시고
춤추고 세상을 쥐었다 놓았다 하며 입방아찧다가 들어와 몸이 좀 노곤해서 천근 만근이지만 그래도 오늘도 난 여전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돈을 많이 벌어들일꺼야, 암.
이렇게 되리라고 짐작하고 믿는 것일뿐 아무것도 보장된 것은 없는 셈이지요.
더구나 먼 장래의 일을 나를 낳아주신 엄마라 하더라도 어떨게 알 수 있겠어요.
그저 ” 케 쎄라 쎄라. ” 할 수 밖에요.
앞날은 알 수도 없고 불투명하니 될때로 되라, 까짓것 적당히 살자.
이 노래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해주려는 것이 아니겠지요.
알 수없는 내일을 걱정하느니 오늘 아니 바로 지금을 나의 최선을 다 해서 열심히 충실하게 살아가라는 뜻을 전해주려는 것이 아닐까요?
도대체 날더러 충실히 오늘을 살라하는데 무얼 어떻게 사는 것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입으로 선언했으니 그 대답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 여쭈어 봄이 타당해 보입니다.
”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뜻을 다 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루까10:25)
이와같이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며 살아 간다면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걸치며 살아갈까 하는 일은 주님께서 맡아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당부하십니다.(마태6:25 -)
그런데 사실 우리가 어디 이 말씀을 지금 새삼스럽게 처음 듣는 말이고 몰라서 못하는가요? 알지만 세상에 발 붙이고 살아가자니 어디 그리 식은죽 먹듯 실행이 되는가요?
그래서 그렇게도 어려우니 신앙생활이 바로 십자가의 길이라 하겠지요.
그런데도 우리가 명심할 일은 우리가 그 때가 와서 재판관앞에 섰을때 바뻐서, 어려워서, 너무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는 것은 타당한 이유로 채택되지 않을 것이란 점입니다.
어려워도 바뻐도 힘들어도 해야만 할 일은 해야되겠지요.
먹고 사는 일로도 바쁜데 무슨 시간이 있어서..
사순절에 우리는 십자가의 기도에서 기도하며 주님의 명을 듣습니다.
“너희 일터에서, 부얶에서 운전하는 차안에서, 길을 걸으면서도 바로 우리가 지나는 그곳 , 머무는 그 곳이 신앙의 터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연히 옛 노랫말 듣다가 생각이 나 언제나 말만 앞세우고 실행은 안하는 저자신을 채찍질하여 회개하는 시간으로 삼는다고 쓴다는게 이리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케 쎄라 같은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