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수를 사랑하여라 )
소위 모태신앙이라는,
나 자신의 자유의지 와는 상관도 없이 순전히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고 조상님들의 안내를 받아 하느님을 만나게 되어 신앙의 길을 들어섰다고
자부하면서 성당을 들어 가고 나서는 출석교인 생활을 시작한 이래,
아마도
나는 참으로 많은 (원수)를 만들지 않았을까 뒤늦게 되돌아 헤아려 본다.
여기서 (원수)다 라고 칭하고 있지만은 실상 그렇게 원수로 까지 생각된 경우야
있었을까 싶고 대부분 (미워했던 ), 그리고 (이유도 없이 싫었던 ) 그런 사람들을
꽤나 여러 명을 스스로 만들어 나 지신을 그 이들로부터 고립시키며 성당을 들어가고
나오는 신앙생활( ? )을 해 왔음을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되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고백한다고 말하는 지금도 친교실에서 마주치게 되면 가까이 다가가 반가운 마음으로 친교를 청하기에 왠지 껄끄럽게 여겨지는 교우들이 없다고 말하기엔 떳떳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친교실에는 꼭 빠지지 않고 들리고 그곳에서 커피까지 얻어 마시면서도
친교는 빼먹고 오다니 이 무슨 하늘아래 부끄러운 신앙생활인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고작 (미운 사람), (싫어하는 사람)들만이 아니고 나에게 정말
상처를 입히고 돌이킬 수 없을 해꼬지를 한 그 (원수)까지도 너는 사랑하여라 하시며
명령하신다. (마태5,44)
이 명제는 명색이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 나의 어깨를 짓누르는 크나큰 멍에가 되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풀어야 할 이 과제를 어디에서 답을 얻을까?
옳지 !
그런 동기를 얻어 성경공부반에 등록하고 시작하여도 응어리는 남아있어 해를 거듭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만 십년을 거듭하였다.
어떤 이는 공부를 십년을 계속하였다니까, ” 와우 ! ” 하며 대단하다고 놀라움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나에게는(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 )의 세월만 흘렀다.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을지를 내 마음안에서 찾아내지 못하였으니.
렉시오 디비나 !
나름대로 묵상도 하고 가슴을 쥐어 짜며 고민도 하였다.
아 ! 어떻게 하나 ? 어디 가서 구하나 ?
어느날, 외출하기 전에 밖의 날씨를 살피느라 창가를 내다보는데,
그 밖에서는 어느 두 사람이 서로에게 크게 노하여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안에서 들리지는 않았어도 아마 서로 ” 야, 이 원수같은 놈아 ! “
그러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을 것이다.
( 원수 ) 같은 놈.
! ? ! ? ! ? ! ? !
갑자기 나의 가슴을 치는 것이 있었다.
(답)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멀리도 아닌 바로 내 눈 앞에 답은 있었다.
저렇게 원수가 되어 싸우는 저 두사람은 모두가 하느님이 똑같이 사랑하시는 피조물이었다.
(원수)는 다만 나의 원수 일 뿐 하느님께는 나를 사랑하시듯 똑같이 나의 원수도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
내가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다른 이를 원수로 삼는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을 거스르는 일이다. 하느님을 거스르며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신앙고백하는 것은 이치에 맞는가?
” 요한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 (요한21,15)
주님께서는 그렇게 싸우는 두 사람을 통하여 나에게 깨우침을 주셨다.
무릎을 치며 바로 나의 앞에 있었던 진리를 깨우친
나는 과연 이제부터 원수도 아닌 나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을 그이들,
(다만 싫어지는 이), 그리고 (다만 미워지는 이)를 친교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반기며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도 자신있게 망서림없이 ” 네. 사랑하겠습니다. ” 시원한 대답을 망서린다면
나는 아마도 여전히 성당을 들어가고 나오는 (출석교인)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 요한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
” 요한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 ” 예수님은 세 번을 물으신다.
(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 )
우리의 주님, 예수께서 그렇게 기도하라며 가르쳐 주신 기도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그렇게 성당을 들락거리며 해 오는 나에게 또 하나 늘 의문스러웠던 주님의 기도문.
의문( 疑問 ) 은 의심 ( 疑心 ) 하고는 다소 말의 뉘앙스가 다를 것이다.
여기서 내가 의문스러워 하는 것은 다분히 궁금히 여긴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왜 ?
예수님은 ” 우리와 늘 함께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 ” 라고 기도문을 가르쳐 주시지 않고
” 하늘 계시는 .. ” 분으로 가르쳐 주셨을까 ?
그래서 나같이 신앙심도 아주 엷으면서 성당을 들락거리는 사람에게 하느님 아버지는
저 멀리 하늘에 계셔서 나하고는 멀리 떨어져 계시는 분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는 건 아닐까 ?
그런데 그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기도문이 하자가 있을까 ?
의문을 하고 또 의문스러워 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렉시오 디비나 하는 동안
나름대로 어렴풋하게 분명한 정리인지는 확인하지 못한채 나 자신의 답을 얻어 보았다.
”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 분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참빛이 세상에 왔다.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 (요한1,1)
”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 (요한3,31)
주님은 처음부터 나하고 내곁에 계시는데 다만 나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늘 왜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이실까 의문을 하며 그분을 나의 마음으로부터 먼
하늘에 계시는 분으로 멀리 두고 다만 성당을 들어가고 나오고 그러면서 그것이 나의 신앙생활 이라고 믿고 살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메마른 마음이었다.
이제 주님을 나의 마음에 모시고 나는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가 다시 기도하자.
” 하늘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 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아맨 ! “
( 푸른 하늘 은하수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밤하늘을 바라 볼 기회가 좀처럼 없어 보인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빔하늘의 별 대신 텍스트 문자 찍어대느라 밤과 낯의 시간을 다 소비하며 컴퓨터 게임에 눈이 벌겋게 충혈된다.
지금은 소설속에서도 만나기 힘들어진 풍경이 됐지만
피난시절 그곳에서 사귄 동무를 따라 그의 원두막에 올라가 갓 따다가 주는 참외를
깍지도 못하고 단숨에 껍데기 채로 씨와 함께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우고 트림을 한 다음 팔베게를 하고 누우면
한여름밤의 하늘에는 별들이 금방 내 배로 쏟아질듯이 황홀하였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그 친구가 조금 무식해 보이는 ? 기미를 알아차리고 헛기침을 한 다음 나도 모르면서 열심히 ” 저것이 북두칠성이고 또 저쪽에 깔린 것이 은하수란다. ” 어쩌구 해 가며
세련된 거짓말로 사기를 친 옛생각이 난다.
내깐엔 참외값을 그렇게 치른다고 그랬을까?
아마도 나의 엉터리 첨성실력을 뒤늦게 알아차린 그 친구가
” 저런 가짜 사기꾼 우주학자에게 참외를 하나 선물한 것을 후회한다. “고
참외값 받으려고 나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원두막에서 별을 바라보며 아마 저 수많은 별들이 이 세상에 살다가 지구를 떠난 영혼들이 하나씩 배치되어 머므르고 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별 하나가 나 하나라고 동요가사는 말해주고 있었으니.
그런데 이즈음 엄마의 자궁안에서 아홉달 동안 잘 자라서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야 할 어린 생명들이 반항하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엄마, 아빠 그리고 주변 가족들의 착각으로 돈을 받고 생명을 죽여주는 낙태전문 악덕의사들에 의해 죽어가는 그 어린 영혼들이 저 수많은 별들에게 가서 쫒겨난 그 지구를 바라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세상에서는 몹쓸 어른들에 의해 쫒겨났지만 그 별세계에서라도 평화로운 삶과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램을 갖어 본다.
Respect Life ! 생명을 사랑하자 !
”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돗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