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정의와 해방신학

1. 해방신학 ( 解放神學, Liberation Theology )

( 그 사상과 태동하게 된 배경 )

지난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걸쳐서 절대다수의 라틴 아메리카의 국가들에서는
부패한 부자계급(주로 지주들)과 그들과 결탁하는 군사 독재정부의 압정밑에서
일반 백성들은 가난과 자유를 억압당한 환경에서 오랜 세월을 고통과 고달픈 생활에
신음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국민들의 정부나 지도계층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어 있었으면서도 조직화될 수 없었던
힘은 압력의 수단으로 작용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가톨릭교회의 까마라 대주교등 성직자를 중심으로한 의식을 가진 정신적 지도자들은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그냥 수수방관하는 것은 반성경적이며 하느님의 가르침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명제아래 백성들을 대신하고 그들의  구심점이 되어 탄압하는 독재군부와 자본가 계급에 저항하고 한편 무지한 백성들을 깨우치고 계몽하려는 운동을 전개하기로 뜻을 모으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을 구하고 그들의 환경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운동이 이른바 곧 해방신학의 그 내용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해방신학에 대한 로마 교황청의 입장 )

당시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주로 남미지역을 중심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해방신학사상에 대하여 연구하도록 교황청내의 신앙교리성성에 지시하게 되었고 그 연구의 결과를 토태로 하여 라틴 아메리카의 로만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에게 해방신학 운동의 전개를 자중해 주기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 이유로서는 해방신학운동이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교회가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그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해방운동을 하지만은 그 운동의 전개방법에 있어서 과격하며 공산주의의 기본이념의 토대가 되었던 레닌 마르크스 주의와 같은 사회개혁방법을 인용, 채택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것은 로만가톨릭교회 교리와 어긋나는 것이라 지적하였다.

( 전개 과정 )

가톨릭 교회의 주교 또는 사제였던 해방신학운동의 중심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소속 교황청의 지시와 명령을 자신들에 대한 탄압이라고 규정하고 그에 반발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계속 그 운동에 집착하면서 일부 사제들은 자신들의 사제직을 스스로 반납 또는 박탈하고 개신교로 이적하는 변태적인 행동으로 반발하는 모습도 있었다.

                                                            * *

이상에서 살펴 본 역사적인 사실적인 사건을 놓고 그에 대한 필자 개인의 생각과 의견
을 이제부터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이것은 한 사건을 보는 개인의 사견이므로 소속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되는 내용도 또는 배치되는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

2. ( 해방신학 운동의 타당성과 문제점 )

– 타당성 –

교회 또는 그 교회의 지도자가 자유를 억압당하고 가난에 시달리는 백성을 염려하고  그들을 그 부정적인 환경으로부터 구출해 내려는 생각과  행위는 지극히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복음을 통한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고통받는 이웃을 바라만 보고 도우려는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을 실행하지 않는,  신앙인으로서의 의무를 태만히 하는 것이므로 죽은 신앙이라고 할 일이다.  (야고보2, 14)

– 문제점 –

일반 평신도는 물론 교회의 지도자들이라 할지라도 일시적으로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오해나 편견 또는 착각으로 인하여 잘못 생각하거나 그 잘못된 생각을 실행르로 옮길 수 있을 것이다.

그 잘못된 것을 이웃이 특히 교회 당국이 공식적으로 지적하여 준다면 그를 계기로 다시 생각하고 살펴보는 일은 아주 마땅하고 타당한 일이다.
그렇게 하여 그 잘못을 바로 잡고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즉 그것이 신앙인의 참다운 모습일 것이며 신앙의 발전적 자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그 잘못을 지적한 이웃이나 교회는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은 일을 가지고 계속된 죄과로 못 박아 단죄하거나 탄핵하는 명분으로 삼을 수는 또한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잘못된 일이 된다.

해방신학 운동의 지도자들이 지녔던 문제점중의 중요한 오류도 그런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주요한 문제점은 아무리 옳은 사상이나 생각도 그 실행과정에서 물리적으로 과격한 실행을 계속적으로 시도하거나 이웃이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면 그 과정에서 무리가 되고 아집으로 변질되고 독선이 되어 그 본래의 좋은 뜻에서 벗어나게 된다.
엄격한 의미에서 독선은 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더구나 행하고자 하는 선이 폭력을 동반하게 될 때 저항하려던 대상인 악과 동일한 또 다른 악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을 가져와 어떤 의미에서도 선과 정의는 명분이 발 붙일 자리가 없게된다.

”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마르26, 52)

여기서 자신의 주님에게 폭력을 가하는 자에게 저항하는 제자는 스승을 보호하려는 너무나 마땅하고 당연한 정의로운 생각에서 도출된 행위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행위를 거두라고 단순한 만류가 아닌 명령을 하신다.

이 대목은 개인적으로 몹시 사고의 혼란을 가져다 준 사건이다.

아무 죄도 없는 주님에 대한 폭력을 저항하며 막는 일이 어떻게 잘못으로 지적 받았을까?

초대교회 시대에 교우들은 네 것, 내것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나누며 이웃 사랑을 실행하였었다.
후대에 와서 자본주의 자유경쟁에서 치부한 지배계급들이 특권층으로 군림하며 대다수의 가난한 백성들을 돌아보지 않는 것을 기화로 마르크스 주의 사상이 태동하여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되었고 초대 교회 처럼 함께 나누자는 논리를 세웠지만은 그것은 폭력에 의한 강제적 배급과 또 다른 새로운 귀족계급만 만들어 내고 그래서 가난한 백성은 여전히 그대로 남는 모순으로 공산주의는 결국 실패한 사상이 되었다.

그리고 잘못된 기득권 지배계층이라도 현실은 그대로 인정해야 할 모순이지만 엄연한 현실은 존재하는 것이다.
( 이것도 크나큰 사고의 혼란을 가져다 주는 대목이다.)

”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 “고 말씀하셨다.

이 때의 카이사르는 이스라엘을 강제로 점령하고 또 학정으로 탄압하던 로마의 황제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도 거두는 세금을 내라고 하시는 것이다.

( 또 다른 경우들 )

화약고라고 불리는 중동 지방.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존 터전을 점령하고 위협하는 이스라엘에 저항하지만 강한 힘에 의존하는 이스라엘들이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므로 물리적으로 폭력으로 항거하므로서 테로리스트로 세상의 지탄을 받는 신세가 되어있다.
그들 자신은 폭력으로 저항하는 행위가 의로우므로 죽어서 순교자가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의 강점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탄압을 받았을 때 안중근의 무기를 동원한 항거는 그 이를 의인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우리 가톨릭 교회 역시 안중근 의사로 추대하고 있다.

일본의 입장으로는 자신들의 잘못은 뒤로한 채 그이를 폭도라고 하여 사형에 처하였었다.
한 사람의 행위도 이렇게 의인과 폭도로 간주되는 이 모순은 참으로 아이로니이다.

한국의 우리 가톨릭 교회내에도 사회정의구현단이라는 사제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이 있어서 그 때 그 때의 시국 현안에 억압받는 시민들의 편이 되어 저항과 행동에 참여하거나 주도하기도 한다.

3. ( 결론적인 개인 의견 )

많은 생각과 묵상을 통하여도  (하느님의 정의와 폭력) 사이에서 개인의 사상과 생각을 정립하는데에 깨끗히 정리되기 어려운 명제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며 혼동을 털어내니 못한 채 아직도 바른 답을 찾아 헤메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흔히 사상을 (보수) 와 (진보)로 나누어 부르며 자신의 편을 옹호하거나 반대편을 매도하지만 진정한 정의에는 진보도 없고 보수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인 교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살인하지 말 것이며,
이웃이 뺨을 때리거든 오히려 다른 뺨도 내밀 것이며 이웃만이 아니라 원수마저도 사랑하여라.

반면에,

시민들은 진리와 정의의 정신, 연대성과 자유의 정신으로 공권력과 함께 사회 건설에 힘 써여 할 의무가 있다.

더 많은 희생과 폭력을 예방할 목적으로 폭도를 폭력(무기)으로 제거하였으므로 그것은 살인이었으되 정의로운 행위로 간주한다.
따라서 안중근의 거사는 의거가 되고 그가 의인으로 추대 받을 수 있는 근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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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정리하려던 의도는 자신의 짧은 생각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더 많은 묵상과 배움을 지향하여야 하겠다는 것이 결론이며 개인의 생각의 혼돈이나 정리에 관계없이 교회의 교리와 그 가르침에 따르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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