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

 

 

얼마 전 한국에서 종교인과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성직자들이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따진 일이 있습니다. '종교인은 세금을 안 낸다'는 인식과는 달리 한국 천주교는 주교회의 결정에 따라 1994년부터 소득세를 원천징수해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교회들이 대부분 '비영리 단체'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정부에 재정보고는 해도 세금보고는 하지 않습니다. 단체 등록 명분대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직자가 받는 임금에 대해서는 일반 납세자와 동일한 세법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저도 세금을 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세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표면상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지만 거기엔 음모가 숨어있었습니다. 영악한 바리사이파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영악한 질문으로 예수님을 몰아붙입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그러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합니까,

합당하지 않습니까?" 마태22, 16-17

 

아주 겸손하고 진지하게 묻는 것처럼 들리지만, 질문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며 계산적입니다. 황제에게 세금을 바쳐야 한다고 말하면,

황제에게 세금 바치기를 거부하는 유다 백성의 반대에 부딪칠 것이고, 세금을 바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 국가의 의무를 반대하게하고,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6년에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렸던 아르켈라오 왕(헤로데 대왕의 아들)을 폐위하고 코포니우스를 총독으로 임명합니다. 총독으로 임명된 그는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에 주민세를 부과하게 됩니다. 주민세는 12세 부터 65세까지의 주민이면 누구나 바쳐야 하는 인두세였습니다. 이 돈은 로마 황실 금고에 입금되었으므로 꼭 로마 은전인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토지세나 관세와 다른 점은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이라는 것입니다.

 

같은 해 6년, 갈릴래아 지방 가믈라 요세 출신 유다가 주민세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며 열혈당이 생기게 됩니다.

이들이 주민세를 거부한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첫째 이유는 하느님 홀로 이스라엘의 통치자라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주민세를 바치는 것은 황제를 통치자로 인정하는 것이므로 옳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흉상과 대비의 좌상이 있었고, 황제를 신으로 떠받드는 글이 새겨 있었습니다. 로마황실에 데나리온으로 바쳐야 하는 이 세금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과 유일신 신앙에 반대되는 동전이었기에 세금 반대 운동이 생겼습니다.

 

이런 강경파의 세금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까지 온건한 입장을 취하며 주민세를 납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질문한 사람은  주민세를 내고 있던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이 한 질문은 "말로 예수님을 궁지에 몰고 올가미를 씌우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22,1)

우리가 알다시피 바리사이들은 종종 ‘헤로데 당원’들과 결탁 하여 예수님을 없애려고 모의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마르 3,6; 12,13 참조).

 

바리사이는 히브리어로 ‘파라쉬’이며, 의미는 ‘구분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들의 가장 큰 임무는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또한 ‘헤로데당원’들은 헤로데 가문과 관련되는 사람들이었고, 로마 식민정권에 빌붙어 권세와 부귀를 누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는 결국 율법 연구와 올바른 해석을 위해 ‘따로 떼어 놓아진’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고 정치와 타협한 이들로,

헤로데 당은 세속적 권한을 위해 정권과 결탁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악의를 아시고 바리사이 제자들을 ‘위선자’ 라고 부르십니다.(18) ‘위선자’는 성경에 나오는 대로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며'(23,3),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일을 하고'(23,5), '인사 받고 스승이라 불리기를 좋아하며' (23,7),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들' (23,16)입 니다. '십일조는 내면서,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중요한 것을 무시하는 사람들'(23,23)이고, '의인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찬 사람들'(23,28)입니다.

 

예수님은 ‘위선자’들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세금으로 내는 돈 데나리온을 가져오라 하십니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데나리온을 사용함으로 황제의 통치권을 시인한 셈이 되었습니다. 데나리온은 황제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권과 결탁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언도 받도록 빌라도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여러분의 임금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이오?” 하고 물으니, 수석 사제들이 “우리 임금은 황제뿐이오.” (요한 19,15)

그러니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어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무엇이 하느님의 것입니까? 하느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입니다. 즉, 황제에게는 주민세만 바치면 되지만, 하느님께는 "몸과 마음 과 정신과 생각을 다하여 사랑을 드려야 한다." (마태 22, 37)는 놀라운 반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들은 바리사이 제자들이 ‘경탄했다’고 전합니다.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서 그들이 경탄했다면 스스로의 회개를 촉구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들이 던진 '누구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피상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에서 자신들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어두움과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들여다보는 기회였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리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것’은 무엇인가?”를 묻게 합니다. 하느님께 드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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