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히 쌓인 눈을 창으로 내다보다가 갑자기 시원한 사과를 한 입 깨물어 먹고싶다는 생각이 났다.
입안에 침이 고이도록 먹고싶다는 욕망이 일었으니 그냥 참고 넘기기 어려울 것 같았다.
눈구덩이를 헤치고 기어이 길 건너편 시장엘 갔다.
그곳에서도 후지사과를 팔고 있었다.
팔기만하는 게 아니라 쎄일 푯말이 걸리고 생각했던 것 보다 싼 값이라 두 개만 사려고 갔던 마음이 변하여
하나만 더, 까짓 거 한개만 더, 이제 곧 구정 설날도 돌아온다니 모처럼 내 입을 호강 시켜주자고 용감하게 주어담다 보니 묵직하게 일곱 개나 되었다.
방에 들어서자 우선 당장 하나를 깎아 깨물었는데, ” 오 마이 갓 .. “
아주 시원한 맛일 거라던 나의 기대가 사과 대신 깨지고 허물어졌다.
마치 푸라스틱 처럼 아무 맛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다음날부터 하나씩 먹었던 사과는 일곱 개가 다 각각 그 맛이 달랐다.
그중 하나는 정말, ” 와 ! ” 그 정도로 아주 시원하고 맛 또한 일품이었다.
어쩌면 그 사과 일곱개는 같은 나무에서 함께 열매를 맺고 함께 자라다가 여기 시장에까지 오게 되고
또 나를 만나서 내 몸의 한 부분을 함께 이루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떤 연유로 그리 맛은 각각이란 말일까.
사과 뿐일까 ?
아주 오래된 일이 되었지만,
언제나 모자라고 또 못나서 그래서 늘 안쓰럽고 불안스런 마음이셨을지 그런 아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싶어서
나의 엄마가 찾아와 시카고에서 함께 지낸 일이 있었다.
뻐스를 갈아 타 가면서 여기 저기 둘러 보기도 하고 그동안 얘기도 나누고 그러자고 해서 차를 두고
여기저기 시내뻐스여행을 하게 되었었다.
뭐, 조금 먼저 와 산다고 제가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지나가는 곳 마다 나는 침을 튀겨가며 무슨 시카고시 관광과에
근무하는 사람이나 되는듯이 아는 체 했었다고 기억된다.
그러고 가는데
바로 건너편에서 어느 한 미국할머님이 창을 내다보면서 혼자 쉴 새없이 중얼대며 뭔지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힐긋힐긋 거리며 흉을 보는듯이 바라다 보았다.
” 엄마, 아마 저 할머니가 치매증세가 있는 가 봐. 저런 이들이 참 많아요. 그냥 신경 쓰지 마세요.”
엄마는 내 손을 꼬옥 쥐더니,
” 너도 또 저 사람들도 그냥 치매걸린 할머니라고 무시 해버리고 말지만 아마 할머니는 지금 마음안에 맺혀있는
한을 쏟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잖니?
너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저런 말들을 귀 담아 들을줄 알아야 해.
네 형제들 하고도 또 성당에서 만나는 이들 하고도 네 생각과 다르다고 내치고 맞서지 말고 거기서 네가 갖고있지
못하는 좋은 것을 찾아내려고 해 봐.”
나는 그 때 엄마의 말씀을 제대로 새겨 듣지도, 또 그렇게 남의 말들을 잘 귀담아 들으려고 하며 살아오지도 못한 것이
분명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를 더 흔들어 깨워주고 있지않나 싶어진다.
나의 엄마는,
칠남매를 낳으시고 또 다 잘 키워주셔서 모두 지금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잘들 살아가고 있다.
나만 빼고는 공부들도 열심히 해서 원하는 학교에도 가고 더러는 학교 전체에서 등수를 다투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하라는 공부와는 담을 쌓고 그 담을 넘어 자꾸만 밖으로만 나돌더니 결국 요모양 요꼴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남의 탓 안하고 내탓을 하니 그것만도 불행중 다행이라 할지…
지금 와서 돌아보니
칠남매는 아까 그 후지사과의 경우처럼
그 생김새도, 그 마음도, 생각하는 것도 다 구구각각이 아닐까 여겨진다.
아까 그 후지사과들 처럼 한 엄마의 배에서 태어나고 함께 자랐건만 그렇게 다 다르다.
나 같이 모자라고 못난 주제에도 불고하고
어떤 경우에는 도무지 납득이 안되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이고 그런 일들이 있으니
아마도 다른 형제들 눈에는 나 같은 건 모두가 다 NONSENSE 뿐이라 그걸 빼고나면 남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그래도 잘 아는 셈이니 그런 평을 받아도 반발은 커녕 나도 동의할 지경이다.
교회에서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다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다 다른 고장으로부터 왔고 다 다른 삶의 배경을
갖고 시카고의 한 교회에서 만나고 모였다.
어떻게 한 마음이고 하나가 될 조건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각각이고 구구색색인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억지로 하나를 이루자고 구호를 외워서 일치를 이루게 될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렇지만 구구각각인 우리들 모두가 가슴 깊이 다짐하고 명심했으면 할 일이 (하나) 있다.
삶의 배경이 다르고 떠나 온 곳이 다른 우리들이 어거지로 나의 이웃과 일치를 이루려 할 일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생각과 세상속에서의 삶 자체를 하느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고 일치를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이웃과는 저절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치가 되고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고야 말 것이다.
정초가 되면 많은 이들은 하느님께 기도를 한다.
하느님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한다.
그중에는,
” 선한 마음을 이루게 해 주소서. 이웃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이웃과 일치를 이루게 해 주소서…” 들도 있을 것이다.
이 일들은 내가 할 일들이 아닌가.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셔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아니다.
하느님은 처음에도 지금도 또 영원히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를 바라신다.
그래서 사람에게 의지를 주셨다. 나는 인형으로 나지 않았다.
내가 하지 않는 일을 하느님더러 어쩌라고 하는 기도인가.

(나)는,
이 사진속의 사람이 무얼 하려고 하는지,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범상치 못한 요상한 모습만 보고는 나는 쉽게 판단하고 비웃고 있었다.
그는 요가를 하면서 아마도 아주 진지하고 나 같은 건 이해하기도 어려울 심오하고 차원 높은 경지의 생각에 빠져있을지도 모른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다고 쉽게 단정하고 쉽게 내치며 단절하는 것은 옳지 않아 보이며 일치를 이루려는 노력에 장애가 되고 방해되는 요소일 것이다.
이웃이 변하여 나와 일치되어주기를 바라기 보다는 대신 내가 변하여 허물을 벗고 나아가야 할 것이다.
허물을 벗어내지 못하는 뱀은 이웃이 아니라 스스로 파괴되어 소멸하고 만다.
필요 이상의 재물도, 과욕에 빠지거나 나를 그 노예로 속박하는 아집( 我執 )도 벗어야 할 뱀의 허물과 같은 것이다.
재물이 불화의 요소로 작용하고 나를 행복에로의 길에 장애가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본다.
전에 본 영화중에, A thousand Acre 라는 영화에서는 많은 땅을 소유한 부자인 아버지가 노쇠하게 되자 그렇게
서로 친하고 사랑하던 세 자매는 갈라지고 불화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재산이 어떻게 나누어질까 하는 문제로 서로 질시하며 불신하기 시작 한 것이다.
위기를 의식한 아버지는 전재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빈털털이가 되어 세상을 뜨자 그 뜻을 깨달은 자매들은
이제 다시 전처럼 다정스런 사이로 돌아간다.
이북에서 맨손으로 월남하고도 부지런하고 남 다른 노력으로 어느만큼의 부를 스스로 이루었던 나의 아버지가
자손 누구에게도 재산을 남겨주지 않고 가신 처신에 나는 얼마나 고마움을 느끼게되는지 모른다.
설을 맞으며 하고 싶은 말을 두서 없이 여기에 나열하는 일은
이웃에게 하려는 교만함에서가 아니라 허물을 좀체로 벗어내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깨우쳐주고 경종을 울려주고픈 뜻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뿐이다.
냉장고를 열어보고 혹시 남아있는 떡꾹재료를 찾아내면 끓여서 설기분 흉내라도 내려고 이제 일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