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아.
이 예쁜 이름은 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이였다.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도 그래서 성도 없었고 이름도 없었다.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진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포대기에 쌓여 보육원앞에 버려졌었던 여자아이.
보육원원장님이 딸처럼 이름도 지어주었고 사랑으로 키워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주어 성한(?) 아이들 틈에 끼어 공부하고 있던 어느날, 미술시간에
선생님은 희아를 강단앞에 서 있으라 하고 아이들에게 그 일그러진 얼굴을 그리라 하였다.
어떻게 짐승만도 못한 생각을 하는 선생도 있었을까 !
어린 희아가 받았을 그 상처의 몇갑절을 되받아도 시원치 못할 그런 자도 선생이라 불리는가 ?
희아는 지금 결혼을 하였고 두 딸을 둔 엄마이다.
그런데 남편은 너무나 잘생긴 미남자이고 딸들은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고 예쁘게 생겼을까.
친구의 소개로 만나 짙은 화장을 하거나 마스크를 쓰고 사귀던 그에게 일그러진 얼굴을 들키게 되었을 때,
전화로 절교를 선언했지만 그 미남자는 조금도 변치않고 오히려 청혼을 했다.
시부모가 될 어른들의 완강한 반대를 예감하고 거절했지만 그 어른들은 말하기를,
” 우리는 너의 겉모습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너의 예쁜 마음을 사랑한단다. 우리 아들과 행북하게 잘 살아다오. “
마치 꾸며논 소설속의 이야기만 같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 아직도 있기에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나보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나의 옹졸한 편견일 것이다.
나자신의 부끄런 마음을 감추고 호도하려는 심산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에 그 남편처럼 희아씨를 만났으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아마도 틀림없이 두말도 안하고 돌아서 가고 전화가 왔어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만약에
그 희아씨의 시부모될 이들이였다면 아들에게 뭐라 했을텐가.
” 얘야. 너 정말 미쳤니 ? 결혼이 뭐 장난이냐? 동네사람들은 어떻고, 너희들하고 함께 성당엔들 마음 편히 다니겠냐 ? “
그러고도 남을 위인, 위선자의 마음이 내안에 있지 않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
그 부부에게서 태어난 건강하게 잘 자라는 두 딸은 엄마를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 숨기려하기 보다는 떳떳이 자랑스러워 한다는
그 두 딸은 그 마음뿐 아니라 얼굴모습도 얼마나 예쁘고 아름다운가.
단지 좀 더 예뻐지겠다고 멀쩡한 모습을 성형으로 마구 뜯어서 고치는 젊은이들의 풍조는 그 딸들을 보면서 부끄러워하지는
않으련가.
희아씨는 세상에 대고 말한다.
” 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상처를 받고 내다버린 엄마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 때문에 공연히 상처를 받으셨을 엄마에게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도 엄마를 만나 품에 안기며 ‘엄마, 사랑해요. ‘ 그렇게 한번 안겨보고 싶어요.
나를 일그러진 얼굴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남편도, 시부모님들도 예쁜 두딸도 만날 수 있었잖나요 ?
엄마, 죄송하고 그리고 감사해요. 사랑해요. “
나는,
부끄럽기만 한 나는 희아씨의 이야기를 비디오를 통해서 보면서 감동해서라기 보다 그이를 보는 내자신이 너무나 창피하고
또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눈물을 한바가지는 넘게 흘리고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눈앞을 가리는 회개의 눈물때문에
몇번이고 멈추어야만 했다.
얼마나 많은 이시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이 잠시의 착각때문에 어리석은 판단 때믄에 잉태하여 모태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아기의 생명을 여러가지 이유로 스스로 합리화시키며 낙태전문보건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가 ?
희아씨가 그 비뚜러진 착각에 빠지는 엄마들을 단 한사람이라도 마음을 바꾸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여
하느님의 존귀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이 멈추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희아씨의 이야기를 여기에 소개하였다.
희아씨,
당신은 이시대의 영웅입니다.
당신의 남편도 딸들도 시부모님도 이시대의 영웅입니다.
당신네들을 보며 당신들에게서 예수님을 봅니다.
나같은 죄인을 깨우치시려고 당신들의 모습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봅니다.
부디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