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사순 제1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2 22일 사순 제1 주일

흙먼지 속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숨결: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지난 수요일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거룩한 사순 시기를 시작했다.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 흙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셨다고 한다. 사실 우리는 한 줌의 먼지처럼 초라하고,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연약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 보잘것없는 흙먼지에 하느님의 숨결이 닿았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때가 묻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금 이 순간에도 뜨거운 사랑으로 바라보고 계신다.

 

창세기는 뱀이 유혹하여 인간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게 되었다고 말한다. 뱀은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어 여인을 유혹한다. 하느님은 분명 선악과나무를 제외하고는 동산의 모든 나무를 따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창세 2,16) 하지만 뱀은 하느님이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하였다는데 정말이냐?고 묻는다.(창세 3,1) 그러면서 하느님 말씀을 시험해 보라고 유혹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어 누군가로 하여금 하느님을 시험하게 만드는 것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유혹 사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다. 성경 속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며 새로 태어난 곳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복잡한 세상이 바로 그 '광야'.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네가 가진 힘으로 돌을 빵으로 만들어봐라", "남들보다 높아져라"며 유혹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로 이겨내셨다.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지만, 첫 번째 여인은 넘어가고 만다. 여인은 하느님의 말씀에서 벗어나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 그리고 함께 있던 남편도 같은 잘못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 1독서 창세기의 이야기다.

 

오늘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첫 사람이 죄를 짓게 되어 세상에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를 우리는 원죄라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첫 사람(아담과 화와)에 대한 원망이 생긴다. 하지만 로마 5,12는 첫 사람이 죄를 지은 것처럼 모두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 모두에게 죽음과 고통이 주어진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의 탓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첫 사람처럼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고통과 죽음은 첫 사람만의 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탓이다.

 

첫 사람을 통해 세상에 죄가 들어온 것과 달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로운 선물을 받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야기하듯이 우리와 똑같은 유혹을 받으셨지만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신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이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써 모두에게 무죄 선언을 가져다 주셨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공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희생으로 무죄 선언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유혹을 이겨내고 오직 하느님께 충실히 살아갈 때 비로소 완전한 무죄 상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지금도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드는 여러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사순 시기가 될 때마다 우리는 특별히 기도, 자선, 단식을 통해 절제하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자 한다. 사순 시기를 맞이하는 지금 다시 한 번 아담과 하와가 걸었던 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길을 함께 걷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 세상을 죄로 물들게 했던 첫 사람들의 길이 아니라 은혜로운 선물로 세상을 가득 채우신 예수님의 길을 따라나서야 한다. 그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게 된 무죄 선언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모두에게도 영원한 무죄 선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순 시기는 파스카의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설정된 40일간의 기간을 말한다. 사순절이 되면 신자들은 이미 받은 세례를 다시 생각하고 참회행위를 통해서 빠스카의 신비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머리에 물을 부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마태 3,15) 살기 위함이다. 하느님의 의로움이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다. 40일의 여정이 끝나고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온 마음으로 감동의 알렐루야를 노래할 수 있도록 선과 악의 논리에서 벗어날 회개는 무엇이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마태 3,8)는 무엇인지 찾아내야 한다. 이웃에게 사랑을 나타낼 단식은 어떻게 실천할지 깊이 묵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희생하고, 단식하며 고통을 즐기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라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나타나는 부활에 희망을 둔 사람들이다. 옳고 그름의 흑백 논리에서 벗어나 함께 더불어 산다는 것은 회개해야 가능하고, 회개의 표시로 단식과 자기 버림을 실천함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다. 부활을 향한 이 거룩한 여정에 동참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바라보며 그분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 신앙의 여정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에 있으니, 유혹을 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만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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