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그리고는 또?

그 때에도
1900 년대말이 가까이 오자 사람들이 술렁댔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것이기때문이였을 것이다.
모두가
밀레니엄을 화두로 삼으며 들떠서 가슴은 뛰고 얼굴은 상기되어 보였다.
아마도 한편 두렵고 그러면서도 은근한 기대감 그런 마음들이 뒤 섞여서 속들이 편치
못해 그랬을 것이었다.
혹시라도 그 노스트라무스 인가 하는 사람이 오래전에 말했다는 지구의 종말이라도
정말 드리 닥치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인들은 물론 온갖 미디어 매개체들도  일터나 동네 태번같은 곳에 모인 사람들은 온통 거기에 묶여서  어쩌지를 못하고들 있었다.

대개 이런 일에 앞장 서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들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어떤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이거나 그도 아니면 그 날이 되어 그렇게 조금이라도 비슷한 일이라도  벌어지면
“봤지? 내가 뭐랬어? 내 말대로 됐잖아.” 그렇지만 안맞아도 그냥 “So what?”
그래버리면 그만인 바람잡이들일 것이다.

이제는 지나간 일이니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날, 세기말 섣달 그믐밤에는 잠을 설치고 뜬 눈으로 지샌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과연 2000 년 첫날 아침에는 무슨 일이 났었는가?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어제의 다음날 즉 바로 다른 날 아침이었었다.
바뀐 것이라곤 벽에 걸린 달력뿐인 것 같았다.

더러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 야 ! 이러구 말줄 알았으면 괜히 난리들 쳤잖아?
이따 만나 한잔 하자구.”
이렇게 해서 달력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다시 옛생활로 돌아갔었다.

이제 시간은 좀 흐르고 그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지난 세월이 억울한 사람들이
또 몇이 모여 숙떡거리며 일 하나 또 벌여보자고 나섰다.

아직 지나가지 않은 날 중에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날,
2012 년 아무날에 지구는 또 종말을 맞게되어 있다.
왜냐하면,
고대  민족이 그 날 이후의 달력은 아예 만들지 않았었다.
그들은 그날 이후엔 달력이 필요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그럴듯 해보이고 또 가장 허술해 보이는 소설인가?

고대 그 민족이란 마야족을 말한다.
마야족은 그 달력을 만들고는 민족의 역사를 마감하였다.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민족문화가 사라졌을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후의 달력을 볼 수가 없게되었다.

영화업자들은 사업가이다.
다른 장사와 마찬가지로 투자해서 큰 이득을 바란다.
영화를 극장에 걸었는데 손님이 안들면 그들은 큰 손해보고 망하게된다.
그러니 극장이 꽉 들어차게 하려면 바람을 잡아야만 한다.

” 얘 ! 지구가 곧 망한데. 어서 가서 그 영화를 보자구.”
불경기에 영화사 돈 벌어줄 일 있으면 표를 산다고 누가 뭐라 할까?

                                                   * * *

그네들 말 않고도,
지구의 종말은 바로 그들이 말했던 바로 그날에, 또 아니면 그 전날에, 그 한참이나 지난 후애도 일어날 수도 안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13,32)

예수님도 모르신다는데 무슨 연고로 그들은 떠버릴까?
또 그 장단에 마추어 왜 사람들은 춤을 추어댈까?
왜 그러는지 그러는 그들에게 물어봐야지 난들 알겠는가?

그러면 난 그날이 오기까지 무엇을 하며 있어야 할까?

누스트라무스의 책을 열심히 읽거나 그런 종류의 영화를 보러 다녀야 하나?
아니면 용하다는 무속인에게 알아보고 골방에서 벌벌 떨며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까?

예수님은 이렇게 하고 있으라고 당부하신다.

“그 때가 언제 올른지 모르니 조심해서 항상 깨어 있어라.”
또,
“네 마음을 다 하고 목숨을 다 하고 생각을 다 하고 힘을 다 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또,
“기름을 넉넉히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처럼 예비하라.” 하신다.

                                                             * * *

마침 우리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느때보다도 어지럽고 그래서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함께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지금보다도 앞날이 더 살아가기 어려운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고”
“안되면 역으로 거꾸로 풀어보라.” 고 했습니다.

무슨 뜻일까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아마도 어려울때일수록 원측으로 돌아가고 기본의 삶에 충실하라는 말이 아닐까요?

원측이란 또 기본의 삶이란 바로 하느님이 만드시고 맡기시며 당부하신 삶,
단순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처음 이민와서는 많은이들이 반지하 아파트를 빌려 다 함께 먹고 자며 그래도
힘든 가운데서도 만족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제 여러대의 차에 큰 집을 꾸리며 얼굴이 뿌옇게되어 여유를 누리며 지내다보니
세상 경기가 나빠지며 좀 힘든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반지하에서 일충으로 오르기는 어렵지 않지만 이충에서 다시 지하실로 옮겨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에게 마음을 고쳐 먹을 수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렵지만 세상엔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서 고통중에 있는 이웃도 얼마던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데 누구를 남을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겠느냐고 생각될 때가 바로 이웃을 돌아볼 가장 좋은 기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아직도 여유롭게 살고있음을 깨닫고 이웃의 손을 잡아주면서
오히려 내가 감동받고 위로가 될지도 모릅니다.

                                                            * * *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에도 추운 말외양간에서 나셨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도 옷 한벌조차 없이 알몸으로 달리셨지만 그 분은 온 세상을  온 우주를 소유하십니다.
일년 내 내 어디에 계시다가 이맘때만 찾아오시는 예수님도 아니고 늘 우리곁에 늘 함께 계셔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겠지요.

                                                             * * *
온통 얼룩지고 더럽혀진 제 자신의 속을 판공성사에 나아가 성실하게 덜어내고 정화하여 조금이라도 나은 새 삶으로 옮겨갈 준비로 이제 골방의 회개 시간을 마련하러 일어나야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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