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부활 제 4 주일
이스라엘은 농업보다 목축이 더 활발하다. 그러다 보니 목자와 양의 관계는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주제다. 목자들은 양과 염소를 신선한 풀이 많은 곳으로 데리고 가 배부르게 하고 목을 축이게 한다. 문제는 양은 귀는 밝지만 눈은 그만큼 좋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목자는 소리로 양을 이끈다. 목자는 앞장서 가며 양을 목자의 목소리로 이끄는 것이다. 이러니 목자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양들은 길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잘 구별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왔을 때 늘 배부르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들은 목자를 따를수록 더욱 목자의 목소리를 믿게 된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의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아기는 어머니에게서 오는 그 사랑에 익숙해져 어머니의 목소리만 따르면 안전 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고 밝히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오늘 교회에서는 성소주일을 지낸다. 거룩한 부르심, 성소(聖召)는 부르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포함하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끊임없이 부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믿음의 기초이기 때문에 성소는 우리 모두의 현실적 문제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성소주일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날이지만, 우리의 성소도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은 성직자와 수도자들 말고 과연 평신도들도 부르시는가?
오늘 복음말씀에, 예수님은‘나는 착한 목자’라 하시며,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도 있고 아직 듣지 못한 양들도 있다고 하신다.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은 무슨 뜻일까? '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하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던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가치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세상을 만들어 나만 위해 살던 지의 차이는 크다. 착한 목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인도로 푸른 풀밭으로 가서 행복을 사는지 아니면 그분의 목소리를 ‘아직 듣지 못해’세상의 어두움에서 영적 배고픔으로 괴로워 하는지는 하늘과 땅 차이 아닐까?
착한 목자는 그분의 목숨을 내 놓았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주님의 양떼라면 우리 모두가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착한 목자처럼 자기 목숨을 다하도록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려면 아직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이웃들에게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사실 신앙인으로 산다고 해서, 세상에 있는 고통과 힘겨움, 삶을 위협하는 것들에게서 보호를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을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두려움과 곤경을 겪지만 두려움과 곤경 너머의 희망을 볼 줄 아는 은총의 사람들이다. 해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라가는 것은 그저 수동적으로 앉아서 시키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목숨을 바쳐 사랑하신 덕에 착한 목자가 되신 그분의 사랑을 함께 살아내는 적극적 삶(Com-passion)이 아닐까 싶다.
수도원을 가보면 거의가 노인들이다. 우리 수도회도 그렇다. 현직에서 물러난 사제·수도자들의 수는 증가하는 데에 비해 입회자는 거의 없다. 과연 현상유지가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해서 교회도 통폐합을 시도하고, 수도회에서 하는 수도원도 통폐합하고 수도회에서 하던 사업도 평신도에게 맡기는 현실이다. 다들 속수무책인 현실을 두려움과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낙담만 할 수 없다. 너무 비관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의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불지 않는가?
성직자·수도자들의 급감 현상은 평신도 형제자매들이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교회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선의와 열정을 지닌 훌륭한 형제자매들은 분명 성령을 통해 우리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모두 잘 아시듯,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며 배운다. 우리가 교회에 봉사하고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낼 때 젊은이들도 수동적인 신앙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적극적 신앙을 배워 살아갈 것이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삶을 따라 살라고 재축하는 오늘 우리를 거룩하게 불러 주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고 사는지, 신앙인의 삶에 충실하도록 서로를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며 미래의 성소자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바치는 공동체였으면 한다. 우리 개개인을 불러 주신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