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 축일
어느 개신교 신자가 성당에 찾아왔다. 미사 중 영성체 하는 시간에 그 분도 내 앞에 왔다. 내가 성체를 드리지 못한다고 하지 조금 황당하고 멀쑥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신자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 “내가 보니 아주 많이 있더만, 그거 하나를 안줘?” 나중에 말씀을 나눌 시간이 있었는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왜 내게 안 줘요?”
가톨릭교회는 유일하게 성체 성사가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의 성체 신심이 매우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심을 믿는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성체를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사실 가톨릭 신자로서 성체는 우리 삶의 원천이자 정점이 되어야 하는데, 그저 교회 안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아무 생각 없이 성체를 받아 모시면 개신교 신자와 무에 다르겠는가?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 축일을 맞아 우리도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해 보았으면 한다. ‘나는 미사 중에 사제가 빵을 축성하면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되고, 또 포도주와 물을 섞어 축성하면 예수님의 피로 변화된다고 믿는가?’
교회헌장 제11항에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그 절정이 성체성사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실 뿐 아니라, 실제로 그분 자신을 내어 주는 복된 성사이다. 왜냐하면, 이 가장 거룩한 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께서 진실로 또 구체적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이며 이로써 이 성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 (토마스 머튼, 「생명의 빵」, 12)는 표현처럼, 성체성사 안에 우리 신앙이 완전하게 요약돼 있어 우리가 성체성사를 부정 하거나 그 의미를 상징적인 것으로 축소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오늘 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다. 이 기적의 이야기 전에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들의 파견 후 돌아온 제자들의 활동 보고를 듣고 제자들과 함께 벳사이다로 향하시는데 군중들이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제자들은 “주님, 해도 기울고, 성인 남자만도 오천 명도 넘으니, 이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나 음식을 구하게 하심”이 좋지 않겠냐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생각을 말씀드린다. 제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옳은가?
예수님은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아니 이게 무슨?…….” 제자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말씀이다. 그래도 제자들은 스승님의 뜻대로 사람들을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앉게 했다. 그리고 기적은 일어났다. 장정만 해도 오천 명이 넘는 그 큰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기”때문이다.
이 기적의 시작은 간단명료했고 너무 쉬웠다. “너 먼저 주거라. 그것이 기적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먼저 내어주면 기적이 일어난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신다. 황당한가? 내가 먼저 주면 나는 뭐가 남지? 하는 생각인가? 사람들은 희한하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받는 것에 익숙하다는 말은 고마워하는 마음도 함께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슬프고 답답한 일이고, 답답한 만큼 제대로 못살았다는 이야기다.
이 슬프고 답답한 현실을 바꾸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오늘 복음말씀에 의하면 받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민감해지는 것이다. 부연설명하자면, 우리는 늘 누구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인가를 나 아닌 누구로부터 받지 않고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 자신의 능력으로만 지금의 지위와 부를 만들었다고 하면 그 말이 얼마나 웃기겠는가? 지금의 내가 있게 만든 누군가를 기억하면 감사의 마음이 저절로 생기지 않겠는가? 그 감사하는 마음이 내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바뀔 것이다.
오늘 2 독서에서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 그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받아 모시는 가장 큰 의미 중 하나가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의 살과 피,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다. 우리가 그분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면서 행하는 우리의 삶이 그분의 사랑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그분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내가 먼저 내놓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만 내 자신과 이 세상의 미래가 희망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Do this in Memory of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