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26일 연중 제 26주일 Fr.김두진(바오로)강론

2025년 9월26일 연중 제 26주일 Fr.김두진(바오로)강론

 

9 28일 연중 제26 주일

뉴스를 보면 좋은 소식은 거의 없고 나쁜 소식만 잔뜩 들린다. 그런데 좋은 뉴스 먼저 들려주면 좋겠지만, 나쁜 뉴스가 늘 먼저 나온다. 좋은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아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을 뿐이다. 온 세상에 나쁜 뉴스로 가득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하느님께서도 보시니 좋다고 하신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복음에서 부자는 이름이 없는 어떤 부자로 표현되고 온몸에 종기가 난 거지는 라자로 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곧 이름 없는 무명의 부자와 이름 있는 유명한 거지의 대조다. 복음에 나오는 어떤 부자는 비록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살지만, 그가 방탕하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거지 라자로도 지독한 가난으로 비참하게 살았지만, 라자로가 훌륭하거나 착한 사람이었다고도 하지 않는다. (20-21)

 

그런데 이름 없는 부자와 라자로라 불리는 거지 사이에는 보이지 않게 선이 있다. 바로 대문 앞에 있던 라자로의 고통을 부자는 매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때로는 이러한 소통의 불능 상태야 말로 끔찍한 지옥이다. 심지어 부자는 죽어서도 라자로에게 직접 말을 건네지 않는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주십시오.(24)라며 아브라함과 얘기할 뿐이다. 결국 지상에서의 선 긋기는 저승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그들 사이에 “큰 구렁”(26)을 만들었고, 절실한 고통 중에도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

 

아브라함의 등장은 부자와 라자로가 모두 유다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알리고, 그들이 지켜야 할 계약이 있었다. 모세오경의 여러 구절은 같은 동족을 돌봐야 할 책임을 율법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특별히 신명기 법전에서는 “너희 동족 가운데 가난한 이가 있거든 가난한 그 동족에게 매정한 마음을 품거나 인색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그가 필요한 만큼 넉넉히 꾸어 주어야 한다. 너희 마음에 비열한 생각이 들어 괄시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신명 15,7-9)고 선언한다. 부자는 바로 이점을 무시했고 그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위반한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죽은 후에 부자가 고통 속에 지내게 된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 즉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었던 계약과 그에 따른 율법을 실행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부자는 살아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주기를 바라지만, 하느님의 뜻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분명히 전해진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31)

 

복음의 부자가 누렸던 화려한 일상은 제1독서에 더욱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모스 예언자는 북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극심한 물질주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를 비판하면서, 사치와 문란함으로 야기된 당시의 사회악과 부조리를 고발한다. 상아로 만든 침대와 안락의자, 넘치는 음식들, 환락을 부추기는 음악, 값비싼 술과 요란한 치장들…. (아모 6,4-6 참조) 모두 인간의 본성을 만족시키는 감각적 요소들이지만, 이런 것에 매이고 중독되다 보면 국가와 사회가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6) 상태로 의식이 마비되고 만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따르려는 의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1독서에 나오는 “걱정 없이 사는 자들”과 반대되는 삶을 사는 이들을 제2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규정한다. (1티모 6,11) 그들은 “상아 침상”과 “안락의자”에서 일어나 “의로움과 신심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는 이들이고 “믿음을 위해 훌륭히 싸우는” 사람들이며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이다. (11-12)

 

사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은 부자들이다. 생명, 시간, 건강, 능력, 이웃, 아름다운 자연,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연인,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많은 사람들, 나를 사랑해주는 많은 친구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 저녁노을,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 온갖 다양한 아름다운 꽃들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이름 없는 어느 부자의 한사람일 뿐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단순히 얼마나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은 부자요, 이웃에게 나눔의 삶을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다. 부자는 항상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 늘 부자로 살 것이고, 가난한 이는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은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도 늘 남을 위해서 봉사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생활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도 늘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하다면 그 사람은 비록 가진 것이 없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기쁜 뉴스를 전하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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