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11월2일 연중 제 31주일 Fr.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11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11월에 들어서면 가을의 화려한 색깔의 나무 잎도 떨어져 내리고 스산한 기운까지 돌아 낙엽처럼 떨어질 우리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즈음에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아름다웠던 삶의 여정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면서, 바쁜 일상에 쫓겨 잠시 잊고 지냈던 그들과의 깊고 애틋한 친교를 다시금 이루게 된다. 그러기에 교회는 해마다 늦가을 11월을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혼을 특별히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성월로 지낸다. 어제가 하늘나라에 있는 천상 교회가 이 세상에서 순례하는 지상 교회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청하는 모든 성인의 대 축일이었다면, 오늘은 지상 교회가 정화중에 있는 연옥 영혼들과 죽은 모든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위령의 날이다. 또한 11월은 전례력으로 대림절을 앞에 둔 연말의 마지막 축제의 달이기도 하다.

 

죽음은 모든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절대적인 공포와 두려움이다. 세상에서의 모든 사람과, 그리고 자신이 남겨 놓은 모든 것과의 이별이기에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것을 초등학생만 되어도 알지만, 자신의 죽음이나 가족 혹은 가까운 지인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항해를 계속해온 배 한척이 종착지로 입항하지 않고, 쉼 없이 바다 위에서 떠돌기만 한다면, 그 항해는 얼마나 피곤한 항해겠는가? 한 나그네가 종착지에 도착하지 않고, 늘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만 계속해나간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가련한 인생일까? 한 인간의 생명이 100, 200, 300세가 되어도 죽지 않고, 계속 지상에 머물러 있으면, 그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구차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죽음은 축복이다. 늙고 지친 이에게도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는 결핍과 한계, 고통과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죽음을 통해 그리도 그리워하던 주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다. 죽음이라는 사다리를 건너가야만 ‘지복직관’이라는 평생소원을 이룰 수 있다.

위령의 날에 우리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세례로 시작된 부활을 향한 파스카 여정의 완성이기에 찬미와 감사의 마음으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한다. 죽음은 절망의 끝이나 죽음이 아니요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다리일 뿐이다. 따라서 하느님을 알아 뵙지 못한 채 죽은 이들을 포함한 모든 죽은 이들을 기억함으로써 그들과 우리가 하느님 안에 함께 살아있음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이 날은 살아있는 이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묵상하며, 종말에 이루어질 구원을 미리 묵상하도록 초대하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기억하면서 삶과 죽음의 울타리를 넘어 하느님 안에 함께 살아있으며,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삶과 죽음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세상살이를 하다가 죽음을 맞으면 끝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절망적인 슬픔의 이유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은 현세의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결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믿는다. 이렇게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조차도 생명과 희망을 무너뜨리지 못하며, 그렇게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주님 안에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지혜 3,9) 우리는 죽음도 생명도 주님 손 안에 있음을 회상하고 죽은 이들과 함께 사랑 속에 살기를 희망하며 기도해야겠다.

 

한편 위령의 날은 누구든 예외 없이 맞게 되는 죽음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여기서 잘 죽을 수 있기를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우리 다운 응답은 지금 여기서 죽으며 사는 것이다. 지금 잘 죽는다는 것은 기꺼이 자신을 내놓으며 더 자비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십자가를 지고 살아오셨던 우리가 기억하는 이들은 그래서 하늘나라에서 위로 받을 만하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내 모든 것을 되돌릴 때에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있는 행복을 맛보게 된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여기서 죽을 때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구원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 (11 3)부터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9일 기도 (Novina)를 시작한다. 우리의 십자가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빌며 돌아가신 연령들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죽음도 함께 기억하자. 주님 저희들이 기억하는 연령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기쁨에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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