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5일 연중 제 3 주일
춥다. 매우 춥다. 바람도 칼이고, 세상천지가 모두 얼음이다. 이렇게 날씨 하나로 바람 하나로 우리가
얼고 녹고 하는 참 맥없고 힘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내 밑이라고 손짓하고 몸짓하는 두려울 것
없어 보이는 권력가들의 욕심은 몸은 움츠러들게 하지만, 아무리 칼 같은 바람이 불어 매서워진 날씨라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을 얼릴 수 없다.
시카고 대교구장 블레이스 J. 수피치(Blase J. Cupich) 추기경, 워싱턴 대교구장 로버트 맥엘로이(Robert
McElroy) 추기경, 뉴왁 대교구장 조셉 W. 토빈(Joseph W. Tobin) 추기경은 오늘, 2026년 1월 9일 교황청
주재 외교단 연설에서 교황 레오 14세가 제시한 원칙에 비추어 미국 외교 정책을 평가하는 강력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대해 수피치 추기경은 신자들을 가르칠 의무를 맡은 목자로서,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생존의 벼랑 끝에 갇히게 만드는 결정들이 내려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레오 교황님은 우리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셨으며,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을 우리 국가와
지도자들의 행보에 적용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맥엘로이 추기경은 가톨릭 사회 교리는 국가 이익이 좁게 해석되어 국가 간 연대의 도덕적 명령과 인간
존엄성을 배제할 때, 세상에 엄청난 고통을 초래하고 모든 국가에 이익이 되며 하느님의 뜻인 정의로운
평화에 파괴적인 공격을 가하게 된다고 증언합니다 또한 그는 미국 외교 정책의 근본적인 윤곽에 관한
현재의 국가적 논쟁에서, 우리가 이 현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나라의 진정한 이익과 우리가 사랑하는 이
땅의 최선의 전통을 저버리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 이라고 언급했다.
토빈 추기경은, 지난주 로마에서 레오 교황님 및 전 세계 형제 추기경들과 함께 추기경회의에 참석한 것을
포함하여, 최근의 사건들은 국가 간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관계를 위한 레오 교황님의 비전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을 확신시켰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조되는 위협과 무력 충돌이 국제 관계를 파괴하고 세상을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을 위험이 있습니다. 라고 강조했다. (성명 전문은 본당 게시판에)
오늘 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천대받던 땅이었던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과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지역이 영화롭게 되리라고 예언한다. (이사 8,23). 이 지역들은 예로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던 곳으로 갈릴래아 땅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북쪽 이스라엘의 땅이었지만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이방 민족들에 의해 짓밟히곤 했던 땅이었고, 이방인들이 정착해서 살기도 했던 땅이기
때문에 유다 예루살렘에서 순수하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하던 유다인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어둠
속에 사는 이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 땅의 백성들이라고 부르곤 했다. 이사야는 이런 짓밟힌 땅에 큰
빛이 주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사 9,1-3) 사제와 자칭 의인들의 땅인 유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비난받던 이들, 억압받던 이들의 땅에 빛이 주어질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이 짊어지던 온갖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부수실 것이기 때문에 큰 즐거움과 기쁨이 주어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집트를 치실 때와 마찬가지로 적들을 물리치시고 억압하던 이들을 쫓아내실 것이다.
오늘 복음은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에 자리를 잡으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부르신 뒤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신다(마태 4,23). 예수님을 통해 갈릴래아 땅에 큰 빛이 떠오른 것이다.
사실, 이사야가 예언한 지 700여 년이 훌쩍 지난 뒤에 등장하신 예수님 시대에도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은
여전히 천대받던 땅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갈릴래아 땅에 사는 이들을 모아 당신 제자로 삼으시고
교회를 세우셨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
사람들을 모아 당신 제자로 삼으신다. 어찌 보면 우리도 결국 어둠과 암흑, 죄와 죽음이 판을 치는 현대판
갈릴래아에서 주님 덕분에 모든 멍에와 무게를 덜어내고 주님을 따라나선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자신이 어디 출신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곧, 우리는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롭지도 않았고, 유력하지도 않은 이들이었으며, “세상의 비천한 것, 천대받는 것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1코린 1,26-31), 종종 자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스스로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는 양 자랑한다.
더 나아가 남들보다 자신이 낫다고 여기며 힘으로 굴복시키고자 한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해보면, 우리 모두가 천대받던 갈릴래아 출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런 비천한 곳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드리자. 스스로를 존귀한 지방 출신으로 여기는 이는 결코
예수님을 모실 수 없다. 스스로 잘난 맛에 다툼과 싸움만 일으키며 세상을 발아래 두려는 권력자들이
회개하는 오늘이었으면 한다. 남을 나보다 낫다고 여기며 겸손히 살아가며, 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자. 그래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1코린 1,17).
빛은 세상 어느 곳에나 골고루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빛을 갈망하고 포착하여 간직하는
이들에게서 더 가치가 있다. 살다 보면 영혼에 어둠이 몰려와 불이 꺼진 듯 빛이 희미해질 때도 있다.
빛의 부재를 처절히 체험한 이라야 이를 감지하고 빛이 그리워 찾아 나서는 법이다. 그래서 삶의 명암은
밝음 못지않게 어둠도 우리가 주님께로 가까이 가게 하는 지름길일 수 있다. 주님을 향하는 영혼에게는
빛이신 주님이, 주님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은 원죄와 더불어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서
그 수치를 말끔히 없애 주실 것이다. 눅눅하고 음습한 죄의 상처와 악취도 빛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할 일은 온종일 태양을 따라가는 해바라기처럼 온 힘을 다해 빛을 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