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라는 5계명에 대해서는‘형제에게 성을 내지 마라.’라고 말씀하시고, “간음해서는 안 된다.”라는 6계명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바꾸신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7계명은 ‘맹세하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라는 9계명과 관련된 율법 조항은 ‘아내를 버리지 마라.’라는 말씀으로 바꾸신다. 이처럼 십계명의 내용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심으로써 완성된 율법을 제시하신다.
요약한다면 옛날 율법이 "이것만은 절대 하지 마!"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었다면, 예수님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살인하지 마라를 화내지도 말라고 하신 것은 몸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말과 마음으로 상처를 주는 것도 생명을 해치는 일이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뒷담화는 사람을 죽이는 죄악이라고도 하시지 않았던가? '간음하지 마라'는 율법에 대해서는 상대를 바라보는 눈부터 바꾸라고 하신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 우리 마음의 '시선'부터 상대방을 존중하라는 말씀이다. 결국 예수님은 규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규칙이 왜 생겼는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사랑)를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사랑이 빠진 규칙은 껍데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금하신 것을 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전문가다. 우선 그들은 율법을 613개의 조항으로 분류해 날마다 암기했다. 일주일에 이틀씩이나 금식하며 기도했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바쳤다. 안식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철저히 지키는 열심을 보였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사는 자신들은 언제나 하느님께 인정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살인하지 마라’는 계명은 단지 살인하지 않으면 그 계명을 지킨 것으로 생각했지, 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지, 하느님께서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들은 모든 계명 안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포함되어 있고, 그 자체가 복음적 메시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전에 나가 기도드릴 때에도 자신들의 열심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종교적 공로 리스트’를 펼쳐내는 자신감을 보였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되 먼저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고 말씀 하신다. (마태 23,23) 이들이 겉으로 볼 때는 세밀하게 계명을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마태 23,5)”으로 하느님께서 원하는 진정한 율법의 정신에서 벗어난 위선적인 사람들이라는 말씀이다. 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마태 23,20)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에 대해서 말한다. 바리사이들에게 의로움이란 율법을 얼마나 완벽하게 지켰느냐는 '점수'와 '계산'의 영역이었다. 이는 눈에 보이는 규칙을 따지는 세상의 똑똑함이다. 그러나 고린토서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깨닫지 못한 것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하신 것" 즉, 규칙을 넘어서는 '사랑의 신비'를 아는 것이 진짜 지혜라는 것이다. 고린토 1서 2장 7절에서 말하는 "세상 창조 전부터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지혜"가 바로 이 '사랑'이다. 율법의 문자 뒤에 숨겨져 있던 하느님의 진짜 마음(사랑)을 예수님께서 비로소 세상에 환하게 드러내 보여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다."고 한다. 바리사이들이 율법의 껍데기(문자)에 매달릴 때,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깊은 마음(자비와 사랑)을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용서할 때,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더 나은 의로움'은 2독서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지혜'와 같다.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1코린 2,9) 바리사이들처럼 자기 열심만 자랑하는 사람은 이 놀라운 사랑의 세계를 결코 볼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인 우리는, 성령을 통해 율법의 완성인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보물을 이미 발견한 사람들이다.
결론적으로, 신앙생활은 법을 지키는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이 숨겨두신 '사랑의 신비'를 매일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기쁜 여정이다. 신앙생활은 점수를 따서 하느님께 인정받는 '시험'이 아니라, 나를 이미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내 마음을 돌려드리는 '연애'와 같다." "내가 이만큼 했어!"라는 자기 의로움 대신, 그 자리에 "부족한 저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믿음과 사랑이 들어차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율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