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2일 사순 제 5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3 22일 사순 제 5 주일

오늘도 아주 긴 복음이다. 어찌 생각하면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이야기인데 이렇게 복잡하고 길게 적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내용은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키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천천히 살펴보면 단순히 한 사람의 소생의 놀라운 일만으로 이해될 수 없는 이야기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라자로를 소생시키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이미 다 알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다시 살리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라자로의 소생은 그리 기분 좋고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복음을 자세히 보면, 라자로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도 예수님은 일부러 이틀이나 더 머무시다 늦게 도착하신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예수님을 만나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주님께서 구하시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느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줄 압니다.”라 말씀드렸다. 예수님께서 오시지 않아 라자로가 죽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마르타는지금이라도라는 말로 곁에 계신 예수님께서 무엇인가 해주시리라는 희망을 두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고백을 들으시고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고 말씀하시니 마르타가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과의 앞 대화에서지금이라도라고 말했는데, 예수님께서 라자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시니지금, 여기서라는 의미의 신앙 고백은 사라지고마지막 날 부활 때에라는 말로다시 살 것에 대한 현실적인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그녀가 가진 부활에 대한 믿음은 충만했지만, 현재지금, 여기서그 부활을 볼 것이라는 확신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앞으로 일어날신앙이 아닌지금 여기서일어나는 신앙을 갖도록 요구하신다. ‘먼 훗날 그렇게 해주시겠지!’라는 믿음이 아니라지금, 여기서하느님의 일과 영광이 드러나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사람들은 이걸 '라자로를 너무 사랑해서 흘린 눈물'이라고 말하지만, 그분의 눈물의 이유는 어쩌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우리를 향한 '비통함의 눈물'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의 능력은 무한하시다" 고백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하느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러나 실제 그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하느님은 좋으시지만 자신의 생활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활 속에 들려오는 주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을, 그들의 삶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확신이 없이 맹목적으로 하느님만을 믿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이런 모습은 하느님의 백성이라 말하던 이스라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매를 데리고 무덤에 이르신 예수님께서돌을 치워라하시며 다시 한 번 그들의 믿음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마르타가 예수님의 심정도 모른 채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하며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만 바라보는 나약한 믿음을 드러내 보인다. 예수님께서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하시며 현재 상황만을 보면 절망적이겠지만, 하느님을 보면 어떠한 기적도 이루어 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다.

 

어찌 보면 라자로는 바로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죄 때문에 썩어 문드러진 내 자존감, 상처로 악취가 진동하는 내 과거, 무기력이라는 수의에 꽁꽁 묶인 내 일상. 예수님은 그 냄새나는 무덤 앞으로 오신다.  "냄새나서 안 돼요!"라고 막아서는 내 고집을 뚫고, 내 이름을 부르신다. 우리가 완벽해서 부르시는 게 아니다. 썩어 문드러진 과거,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악취 나는 모습 그대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일어서기로 '결심'만 하면,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렇게 모자라고 덜 된 우리이기에 사순의 은총이 절실하다. 이 허다한 죄는 오로지 십자가의 피로만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주님의 은총이 너무나 무조건적이고 파격적이라 쉽게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방법이 너무 쉽고 간단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아해하고 의심한다. 이런 의심에는 통 큰 하느님 사랑을 선뜻 받아들여 믿지 않는 것이 곧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은총의 선물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약속이 있고,  선물로 주신 십자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사순 시기는 죄와 맞서는 능력을 얻는 구원의 때다. 그러기에 사순 시기에는 신앙의 큰 기쁨과 벅찬 감격이 따른다. 이제 믿는 척 꾸미고 사랑하는 척 겉모양에 취했던 거짓 믿음을 잘라내고, 오늘, 지금, 이 순간, 애타게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께 온 마음으로 응답해 드리자! 예수님은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신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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