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주님 부활 대 축일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성야의 첫 예식은 새 불의 축복이다. 불은 죽음과 같은 종살이에서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을 이끌던 불기둥을 상징한다. 이제 주님 현존의 상징인 성령의 불꽃이 우리 신자 모두에게 나눠질 때 그 불꽃은 점점 늘어나면서 어두운 성당을 밝힌다. 우리는 이 사랑의 불꽃이 우리 내면을 환히 밝혀주는 거룩한 변모의 빛이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부활찬송은 이렇게 기도한다.
"오, 참으로 복된 밤, 하늘과 땅이 결합된 밤,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된 밤! 그러므로 주님, 주님 영광 위하여 봉헌된 이 촛불을 끊임없이 타오르게 하시어 이 밤의 어둠 물리치소서. 향기로운 제사로 받아들이시어, 밝은 천상광채에 합쳐 주소서. 샛별이여, 이 불꽃을 받아들이소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를 밝게 비추시는 샛별이여." 죄로 인해 하느님과의 친교가 단절된 이후 이제 주님을 통해 다시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순간이 바로 부활이다.
사람들은 보통 '증거'라고 하면 눈에 보이는 무엇을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증거는 역설적이게 '비어 있음'이었다. 오늘 복음은 빈 무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면서 텅 빈 무덤이야말로 예수님 부활의 완벽한 증거가 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으로 향한다. '아직도 어두울 때'라고 하는 것은 그녀가 아직 하느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어두움 속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아마 금요일 저녁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 시신을 거두어야 했으니, 향료를 제대로 발라드리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그런데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은 이미 치워져 있었고, 무덤은 텅 비어 있다. 누군가가 훔쳐갔을 것이라 짐작한 그녀는 뛰어 급하게 제자들에게 알린다. 우리도 인생에서 소중한 걸 잃었을 때 그 '빈자리'만 보며 슬퍼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 빈 무덤은 "누가 훔쳐갔나?"라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그분은 이제 여기 계실 필요가 없다는 확실한 승리의 기쁨" 이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마리아가 무덤에 간 때는 주간 첫날 아직 어두울 때였다. 주간 첫날은 안식일 다음 날인 ‘여덟째 날’이다. 주님 부활로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신 하느님을 찬송하며 우리는 부활 팔일 축제를 지낸다. ‘주님이 마련하신 날’인 주일은 은총의 날이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의 생명을 누리는 우리에게는 주일 없이는 신앙도 믿음도 있을 수 없다. ‘여덟째 날’인 모든 주일은 바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거룩한 날이기에 그렇다.
마리아의 전갈을 받은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요한)가 함께 달려갔지만, 젊은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한다. 뒤에 도착한 베드로가 먼저 무덤 안으로 들어가 살피기 시작하지만, 요한은 잘 포개놓은 수의를 보고 믿는다. 성탄 때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의 포대기와 빈 무덤에 개켜있는 수의에서 강생의 신비와 부활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에게는 사랑의 직관이 있었다. 요한은 가지런히 놓인 수의만 보고도 이건 시신을 도둑맞은 게 아니라 그분이 직접 일어나 나 가신 것임을 단번에 알아차린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금방 알아차리는 것과 같다. 요한과는 달리 베드로는 직접 들어가서 꼼꼼히 살핀다. 우리도 때로는 의심하고 확인하고 싶어 하지만, 결국 주님은 각자의 방식대로 확신을 주신다. 사실 객관적인 증거는 설득력이 크지 않다. 2,000년 전 빈 무덤 사진을 보여준다고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그래서 부활은 머리로 이해하는 논리 퀴즈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만이 알아채는 '가슴의 신비'다. 그러기에 주님의 부활을 노래하는 이 시기에 주님의 부활이 모든 이에게 전달되고 그들 또한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새로운 부활의 증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부활을 체험한 사도들의 삶을 보고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고, 사도들의 치유 기적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으며, 사도들의 전교를 통해서 주님의 부활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텅 빈 무덤 앞에서 슬퍼할 필요가 없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이 아니라, 변화된 우리들의 삶 속에 살아계신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그리스도(요한 1,14)이시다. 십자가 죽음이 끝이 아니다.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듯이 말씀도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친교로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돕는 사랑의 삶이 영원한 생명의 문을 향한 여정임을 깨닫고 하늘 위 하늘을 바라보고 기도와 성사로 나아간다. 우리 앞에 놓인 예수님의 빈 무덤은 혼돈에 가까운 의문들 앞에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는 믿음의 성숙을 말하고 있다. 부활은 믿지 못하면 혼돈의 어두움으로 남아 풀어낼 수 없는 신앙의 신비이지만,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여 지는 신앙의 신비다.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