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배터리가 나가면 아무리 키를 꽂고 돌려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움직일 수 없는 '죽은 차'나 다름없다. 하지만 다른 차의 도움을 받아 연결하면 다시 살아난다. 사람도 마음의 힘이 떨어지면 삶의 의욕이 사라지고 두려움과 걱정 속에 주저앉게 된다. 요즘 사람들이 그렇다. 나라의 지도자는 아무 걱정 없다고 하지만, 전쟁의 여파로 휘발유 값은 오르고 덩달아 물가는 천정부지로 높아지고, 거기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겹쳐 살기 어렵다고 하면서 마음의 배터리가 죽어가고 있다.
신앙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세속화된 세상과 영적으로 피폐해진 교회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깊은 무력감에 빠진 이들이 많다. 이처럼 '방전된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할 힘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답은 바로 '성령의 바람'에 있다. 마치 이웃 차의 도움으로 점프 케이블을 연결해 시동을 걸듯, 우리 힘만으로는 켤 수 없는 삶의 시동을 성령께서 걸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다. 희망이 없었고, 용기도 없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성령께서 오시자 완전히 달라졌다.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고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고 숨어 있던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게 된다. 곧 성령은 “죽은 마음에 다시 시동을 걸어주시는 하느님의 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의 상태가 그랬다.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다락방 문을 꼭꼭 잠근 채 숨죽이고 있었다. 완전히 방전된 상태였다. 그때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의 상처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유다인들에게 '오순절(샤부오트)'은 원래 밀 수확을 감사드리는 풍성한 추수 감사 축제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날은 곡식 대신 '성령'이라는 가장 가슴 벅찬 선물을 받아 영적으로 완벽히 충만해진 날이 되었다. 우리도 매일 성호를 그으며 성부, 성자, 성령을 고백하지만 사실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아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성령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시고, 마음을 움직여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게 만드는 내면의 역동적인 힘이다. 그래서 오순절 다락방에 세차게 불어 닥친 성령의 바람은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압도적인 사랑'이었다. 내가 하느님께 이토록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제자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충전되었다. 두려움에 떨던 이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 예수님을 증언하는 '신바람 나는 삶'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성령을 받은 사람은 미움보다 사랑을, 두려움보다 평화를, 원망보다 용서를 선택하게 된다. 우리가 용서 못하는 이유는 사실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손해 볼까 봐 바보처럼 보일까 봐 상처받을까 봐 하지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사랑을 주셔서 닫힌 마음을 열게 하신다. 성령이 없는 신앙은 형식만 남고, 사랑이 없으며, 두려움 속에 갇힌 신앙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성령 안에 머무르면 신앙이 살아 움직이고, 사람을 살리고,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고, 지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성령강림은 단순한 옛날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안에서도 계속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사랑에 연결될 때, 성령께서 우리 삶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신다.” 자동차가 다른 차와 연결되어 다시 시동이 걸리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에 연결될 때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성체 앞에 머무르며, 성령께 마음을 열라는 것이다.
성령이 빠진 신앙은 알맹이 없이 소리만 요란한 징과 같다. 메마른 사막 같은 우리 삶을 옥토로 바꾸려면 성령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성령으로 가득 충전된 신앙인은 이제 주저앉아 있는 또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충전시켜 주는 '걸어 다니는 사랑의 배터리'가 된다. 오늘, 무기력한 내 삶의 문을 열고 이렇게 기도하자.
"오소서 성령님!(Veni Sancte Spiri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