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마지막 주일

9월의 마지막 주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만남 가운데 하느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더 아름답게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가르 쳐 주십니다. 마르코 복음을 보면 오늘의 이야기전에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예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 중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길 에서 논쟁”(마르 9,34)을 합니다. 제자로 불러주신 것은 섬기라는 부르심임에도 제자들은 서로 다투면서까지 높은 자리에 있고 싶어 합니다.

제자들은 전에 더러운 영을 쫓아내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9,28 참조)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는데, 이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자가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했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들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성질 급한 요한은 예수님께 와서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하게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9,38) 라고 합니다. 요한은 그가 제자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못하게 한 일이 잘한 일인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여기서 주위 깊게 읽어야 할 말씀은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9,38)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요술을 부리는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사람” (41)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라 함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하며, 성령을 받은 이들인지라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이 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23) 일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저 스승님의 이름을 요술 방망이로 생각하고 있는 요한의 질문이 조금은 당황스럽습니다. 믿는 자만이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더러운 영은 깨끗한 영, 곧 성령으로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생각하기엔 이러한 기적은 예수님의 허락을 받은 자들한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기득권이 훼손당한다고 생각해서 그들을 막으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이런 편협하고 그릇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면서 요한에게 그러한 행위를 막지 말라.”(39)고 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후에 바로 주님을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다시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41)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인간적으로 볼 때 작은 이이지만, 고귀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 조그만 선심을 베풀어도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보상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제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제자들을 보내신 주님을 받아들이는 행위이고, 주님을 대접한 것과 같은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40) 처럼 말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해 단호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마르 9,42) 예수님의 제자를 대접하는 것이 상급을 잃지 않는 것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도 반드시 형벌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당대에는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반역자의 지도자를 처형할 때 공개적으로 목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진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로마 군인들의 이러한 끔찍한 형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경고는 요한의 그릇된 행동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범위를 열 두 제자에만 한정하지 않으시고 복음 전파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로 넓히셨습니다.

 

이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상징적으로 서술된 이 말씀을 절대로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즉 실제로 눈을 빼고 손과 발을 잘라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렇듯 단호하게 죄를 향한 마음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지옥은 원문의 게엔나를 우리말로 옮긴 것입니다.

게안나는 본래 예루살렘 남쪽에 있는 벤힌놈 골짜기의 그리스어 음역입니다. 기원전 633년 유다 왕 요시아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까지 벤힌놈 골짜기에서 몰렉 신에게 어린이들을 불 살라 바쳤습니다. (2열왕기 23,10) 따라서 벤힌놈 골짜기는 고약한 곳으로 불리게 되다가 대략 기원전 2세기부터 종말에 죄인들이 갈 곳이란 뜻으로 게엔나지옥이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주님의 계명은 사랑이 근본입니다. 베풀고 나누는 행위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직설적이고 타협이 없는 단호한 말씀을 남기신 것은 손과 발을 잘라내는 무모함이 아니라 사랑을 살아가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리라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요?

죄의 행위들 대부분은 자기의 만족을 위해 저질러지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 말씀은 사랑을 살아가는데 방해되는 모든것들을 과감하게 잘라 버리라고 하시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 김두진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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