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
살고있는 동네에서 자주 다니는 길들의 이름을 보느라면 흥미로운 것들을 만나게 된다.
혼자 나름대로 멋대로 해석을 곁들여본다.
살고있는 아파트 바로 곁에 President Road 라는 길이 있다.
아마도 전에 대통령이 이 동네를 시찰할 계획을 세웠다가 마침 그동네에 민 모이세라는 멍청한 자가 살고있다는
말에 질겁을 하여 그 계획을 취소하여 길이름만 남았을까?
그길을 좀 지나 가느라면 Prince passing 라는 길이 연결된다.
지역이 개발되기 한참 전에 왕자가 탄 가마행렬이 지나다가 진흙탕에 가마가 넘어져 온통 흙투성이가 된 왕자의 몰골이
만화가 되었기 때문에 길이름이 그 기념으로 남았을까?
바로 곁의 길은 Elk trail 이다.
원래 고라니들이 늑대들을 피하느라 도망다니는 길로 개척해 놓았었는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지나던 왕자가 탄
가마와 길목에서 마주치는 바람에 참 재수가 없다고 그길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뜻일까?
그런 엉터리없는 의미는 아니겠지만 모든 길들의 이름도 각기 독특한 뜻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디 비단 길이름 뿐이겠는가.
(나)가 태어났을 때
나의 아버지는 기뻐하며 잘자라서 건강하고 훌룽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어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름에 또 이름을 지어주신 조상의 뜻에 맞게 살아오지 못한 (나)는 심히 부끄러움에 사로잡혀 사는 자신을 보게된다.
하느님은 창조 그 엿새되는 날에 사람을지어 숨을 불어넣으시며 축복해 주시며 ADAM 이란 이름을 주셨다.
( 땅 ), ( 흙 ) 그런 뜻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땅이란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며 현세에서 그 삶의 기본이다.
또 한번 엉터리 해석을 해보면 아마 (나)의 첫조상의 아담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아서 요즘의 성형수술로 멋대로 미남, 미녀가 된 젊은이들과는 달리 우람하고 우락부락하게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진이 남아있지 않아서 정확하진
않아도 그 겉모습이 (아담)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담)하게 생기지 않았으면 구태여 (Adam) 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을까?
내가 세레명으로 얻은 모이세.
시나이 산에 올라 십계명을 받아 내려온 모이세는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모아 데려 나오라는 하느님의 명을 받아
수행하였다.
아마도 생각하기에, 백성들 앞에 나아가 우리 모두 함께 ” 모이세 ! ” 그렇게 왜치니 모여 함께 홍해를 건널 수 있게 되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어 흐터지게 되기전 까지는 모두는 한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는데 아무리 세종대왕이
태어나기 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국말, “모이세. “를 알아듣지 않았을까?
터무니 없이 엉터리지만 ‘ 믿거나 말거나’.
하느님은 창조되는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사람이 지어주도록 허락하셨으며 또 잘 관리하도록 명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명을 어기고 자연과 동물을 함부로 다루고 파괴하며 어디 그뿐일까?
사람의 생명마저도 마구 파괴하여 하느님을 슬프게 해 드리고 있지 않는가?
이름 그 하나, 하나는 모두 독특한 의미를 가지며 그 이름에 맞도록 살아가야 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하느님은 (나)를 하나 하나 그 이름으로 부르시며 주님 앞으로 나오기를 고대하고 계실 것이다.
( 길 )
우리는 길을 따라 살아간다.
성당에 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장보러 가는 길.
일하러 가는 길.
사랑하는 연인과 산책하는 길.
나의 노부모가 계시는 양로원을 찾아가는 길.
길, 길 그리고 또 길…
사람뿐인가,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동물도 하늘을 날며 사는 동물도 물안에서 헤엄치는 동물도 모두 제나름대로
가는 길을 따라 삼다.
비행기도 배도 그 항로가 있고 그에 따르지 않는다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땅위에 난 길만이 길일까?
아담과 하와가 영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 먹으로 갔던 잘못된 길도, 카인의 길도 가야했던 길을 잃은 잘못된 길이었다.
큰아버지 아부라함이 조카와의 다툼을 피하고자 택했던 관용의 길도 당장의 이로움을 위해 우선 물좋고 기름진 땅, 소돔을 택했던 롯의 선택도 다 (나)가 선택한 길이었다.
(나)의 길은 무엇일까? 어디에 있을까? 아디로 가야할까?
넓게 잘 다듬어진 밝고 쉬운 길일까?
아니면 지금은 견디기 힘든 받아드리기 어려운 좁고 험난한 가시밭 길일까?
성경은 (나)가 고통을 만나거든 축복으로 여겨 기뻐하라고 가르친다.
주님께 영광이 되고 (나)가 그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을 위해 지금의 고난을 피하려 하지말고 받아들이고
슬기롭게 이겨내라 가르친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길)이심을 알게 해 주셨다.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안에 살며 그 사랑안에 살며 (나)가 그에 따라 살며 실행하며 살아가는 그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일 것이다.
(나)는 나의 짧고 또 그리고 긴 나의 삶의 여정(Journey)에서 참 길(Road)을 따라 살아가기를 다짐하자.